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4건
더 보기-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4만 청중 매국외교 규탄 “평화선, 3억 불과 바꿀 수 없...
일자 : 1964.3.2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즉각 중지하라”고 주장했으며, 한편 공화당은 부산 토성국민학교 교정에서 시국강연회를 열고 “한일국교정상화는 국제정세로 보아 불가피하며 야당의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응수했다.”정부의 굴욕외교를 규탄하기 위해 지난 15일부터 20일까지 전국 12개 주요도시에서 성토대회를 계속해온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위는,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동경에서 일본정부 및 여당수뇌와 마지막 정치적 협상을 꾀하고 있는 때를 같이하여 대일굴욕외교반대강연회를 열고, “정부의 대일외교는 매국외교”라고 규탄, “한일회담을 즉각 중지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굴욕외교반대강연에서 윤보선, 조재천, 이상철, 조영규, 함석헌,...
-
서울대·고려대·연대생 약 5,000명, 대일 굴욕외교에 반대하며 5·16 이후 최대 규모 ...
일자 : 1964.3.2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함석헌·장준하의 대일굴욕외교반대 강연이 끝나면 하기로 마지막 결정을 보았다.(서중석, 「6·3사태: 64년 봄의 한일회담 반대시위」 『신동아』 1985년 6월호 297쪽)은 이날 하오 2시 강당에서 장준하 씨의 ‘현시국에 있어서의 대학생의 임무’라는 제목의 강연과 함석헌 옹의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라는 시국강연회를 가졌다.『동아일보』 1964.3.24 석1면·3면, 『경향신문』 1964.3.24 석1면·7면 서중석은 3·24시위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박정권과 학생들의 숙명의 대결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시위”로 그때부터 1990년대까지 계속된 학생운동의 2단계 출발점이라고 평가하였다. 1960년 4·26...
-
범청년민주투쟁위원회 침묵시위
일자 : 1969.4.19
분류 : 분류없음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3시경 서울 중구 명동 대성빌딩에서 4.19기념강연회를 마친 범청년민주투쟁위원회(대표최고의원 이기택)는 함석헌·이철승·장준하 씨 등을 앞세우고 약 300명의 청중들과 함께 종로 보신각까지 15분동안 침묵시위를 벌인 후 아무 사고없이 해산했다. 이날 시위대는 기마경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인도로 행진하면서 간혹 택시에 가설된 확성기로 “3선개헌을 반대한다”는 등 구호를 외쳤다.『동아일보』 1969.4.21. 3면4.19 제9선언문독재독선의 망령이 재림한 민주수난의 회귀점에서 침통한 울분을 억누르고 역사의 소명을 받고자 오늘 우리는 4월 민족의 횃불 아래 모였다. 거대한 공포와 황색 에로문화의 조작적 상황 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