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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3인조 공개투표, 시간제 투표
일자 : 1960.3.1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선거위원이 검사한 후 선거위원이 직접 투표함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목포에서는 3인조 뿐 아니라 5인조 투표 광경도 목격되었다. 목포 양동 제1,2투표소는 오전 7시 투표가 시작되자, 사전에 조직된 조 단위로 먼저 여자 5인조와 공무원조 끼리 투표를 하였다. 경주 황오리 투표소에서는 3인조가 같이 오지 않으면 투표용지를 주지 않았다. 대전시 문화동 육군 제20공병대대의 3관구 투표소에서는 유권자들을 A·B·C로 분류하여 A는 자유당 지지자, B는 중간, C는 야당으로 분류해 C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고 A·B는 3인조로 구성하여 질서 정연하게 공개투표를 하였다. 한편 대구의 투표소 가운데는 3인조가 투표소 앞까지는 같이 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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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서장서리 송상기 경감, 육군5관구사령관 등과 비밀회담
일자 : 1960.4.14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14일 오전 육군 5관구사령관 윤춘근 소장 외 39 예비사단장김희덕 준장, 마산서장 서리 송상기 경감은 약 10분간에 걸친 비밀회담을 가졌다. 회담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동아일보』는 “혹시 시위가 다시 일어날 경우 경찰 병력만으로는 이를 막기에 불가능할 때 군부의 병력 응원문제들을 논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회담 후 송상기 경감은 “데모는 여하한 형태의 데모라도 앞으로는 단연코 용납하지 않겠다. 지난번에는 평화적인 데모를 한다고 해서 방관하였다가 결국 경찰이 속은 셈이 됐다”라고 말하였다.『동아일보』1960. 4. 15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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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임시 국무회의에서 학생시위 수습책 논의
일자 : 1960.4.1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새로운 해결책을 강구해야만 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날 오후 5시부터 4시간에 걸친 국무회의를 마친 당국자는 “우선 질서를 잡아 놓은 다음에야 잘잘못을 따질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시위 진압을 위해 강경책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였다. 국무회의 도중 홍진기내무장관은 경무대를 방문하고 사태진전에 관해 보고하였다. 또 이승만대통령 경호담당 곽영주경무관은 국무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중앙청을 방문하였다. 국무회의가 끝난 다음 김정렬국방장관은 약 1시간여에 걸쳐 제6관구사령관과 회합하였다고 하는데 무엇이 논의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서울신문』1960. 4. 19 조1면 ;『동아일보』19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