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새벽 5시 40분, 경무대 앞 세종로 1번지 경무대 여비서 이무기씨 집에서 전 국회의장이기붕씨 일가족 4명이 권총 자살하였다. 그의 가족은 부인 박마리아·장남 이강석(이승만 박사에게 양자 입적)·차남 이강욱 등이다. 이기붕은 28일 민의원 의장직의 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었다. 계엄사령부에서는 28일 이기붕 일가 자살사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금조(今朝) 5시 40분 이기붕씨·박마리아 여사·장남 이강석 소위·차남 이강욱 군은 시내 세종로 1번지 소재 경무대 36호 관사에서 자결하였다. 동 유해는 자결 현장에서 검사와 의사의 검안을 끝마치고 수도육군병원에 안치 중에 있으며 그 진상은 조사 중이다.『조선일보』 1960. 4. 28 석1면 ; 『동아일보』 1960. 4. 29 조3면. 『조선일보』 4월 28일 석간 3면 기사에 따르면, 이기붕 일가는 4월 19일 시위가 거세게 일자 서대문 자택을 떠나 돈암동에 있는 비서 전영배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19일 오후에 시위대가 전영배의 집까지 몰려오자 비서인 전영배와 함께 포천 방면으로 도주했다. 도주 당시 이기붕은 천으로 얼굴을 가렸고 박마리아는 안경까지 벗고 있었다고 한다. 이기붕 일가는 창동까지 쫓아 온 시위대의 추격을 피해서 포천 6군단장인 강영훈에게 의탁하고자 하였다. 이기붕 일가는 군단장의 보호로 약 이틀간 머문 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25일부터 다시 시위가 일어나자 이기붕 일가는 행방을 감추었다. 이기붕의 행방을 놓고 여러 가지 추론과 소문이 퍼지고 있는 와중인 28일, 이기붕 일가는 경무대 앞 관사에서 자살을 택했던 것이다(『조선일보』 1960. 4. 28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