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글자 크기 조절

양민학살사건 유족 마산시민, 시내에서 시위

25일, 마산시에서 시민 노현섭·김용국시위가 있었다. 이들은 “보도연맹보도연맹은 1949년 6월, 좌파전향자로 구성된 반공단체였다.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었다. 그러나 실제 구성원들은 당시 경찰·행정기관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가입시킨 양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남로당 경남도당에서 활동했던 유혁은 “남로당의 이탈은 가하나 보련(보도연맹)가입은 불가하다”는 중앙당의 지시가 있어 남로당 출신자들은 대부분이 보도연맹 가입을 거부했다고 말하였다(「유혁 인터뷰」, 1990. 2. 23(한상구, 앞의 책, 199쪽에서 재인용)). 관계자들의 행방을 밝혀라, 만일 죽었다면 진상을 공개하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마산 시내를 행진하였다.노현섭은 친형이 무고하게 살해당한 유족으로서 이후 전국 피학살자유족회 회장이 되었다. 이날의 시위가 계기가 되어 마산 일대의 유족 수백 명이 노현섭이 위원장으로 있는 마산자유노조사무실로 모여들었고, 노현섭은 이곳에서 보도연맹 관계 행방불명자 신고를 받기 시작하였다고 한다(「노현섭 인터뷰」, 1990. 2. 24(한상구, 앞의 책, 180-181쪽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