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권승렬법무부장관은 김준연이 (가칭)구국청년단 대표 고정훈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사건을 조사하게 되면 조봉암사건일명 ‘진보당사건’이라고도 불린다. 1958년 1월, 자유당정권은 진보당 간부들이 북의 간첩과 접선하고 북 측과 유사한 통일방안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조봉암 등 진보당 인사들을 구속하였다. 당시 재판부는 양명산(본명 양이섭)의 1심 자백-북을 12차례 왕래하며 거액의 자금을 조봉암에게 전달했다-과 감방 안에서 양명산에게 전달하려 했다는 조봉암의 쪽지 등을 중요 증거로 채택하였다. 결국 조봉암은 재심판결 다음날인 1959년 7월 3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년』, 역사비평사, 2000, 249쪽 ; 서중석,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2008, 역사비평사, 108쪽).과 김구선생 살해사건의 전모가 확실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였다.『조선일보』 1960. 5. 26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