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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재선거, 극심한 부정선거로 무소속 후보 사퇴·민주당 선거 포기

23일, 영일과 함께 영주 일부 지역에서도 재선거가 실시되었다. 자유당이정희, 민주당황호영, 무소속의 박용만이 선거전을 치른 영주 지역에서는 예상대로 전날의 삼엄한 분위기가 선거날까지 이어졌다. 이곳 역시 집단공개투표, 무소속 후보의 사퇴, 야당의 선거 포기 선언이 줄을 이었다.
무소속 박용만 후보는 오전 7시 30분 경, 영주 제1, 2투표구에서 경찰과 자유당 완장 부대가 투표소 문을 폐쇄한 채 3인조 공개투표를 강행하고 있다며 후보 사퇴를 선언 하였다.
오전 11시 경 민주당 황호영 후보 또한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인 윤명운, 최희송 및 군당 상임위원들과 긴급 토의를 거친 결과 공명선거를 기대할 수 없다며 선거 포기를 발표하였다. 민주당은 부정선거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7가지로 정리하여 선거포기 사유로 발표하였다. ①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경찰관과 자유당 완장부대의 경비, ②3인조 공개투표, ③투표소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④투표 참관인의 출입 거부, ⑤참관인 구타, ⑥시간제 투표, ⑦낭하식(廊下式) 투표소 설치 등이 그것이다.낭하식 투표소란 기표소와 기표소 사이를 반만 막아 서로 볼 수 있도록 구조된 투표소이다.
민주당 황호영 후보가 밝힌 선거 포기 사유 1. 22일 하오부터 무장경찰관 수백명이 투입되고 인접 각 군으로부터 정체불명의 청년 수천 명이 수십대의 트럭으로 투입되고, 일몰 후부터는 경찰관과 자유당 완장부대가 거리거리에 배치되어 계엄령을 방불케하고
2. 각 부락 리, 동에 있어서는 3인조 편성정비에 몰두하는 등의 현상은 전날 밤의 공기로 보아 불문가지고, 급기야 23일인즉 100미터 선을 투표소로부터 기점을 삼지 않고 학교 정문을 기점으로 삼아 혹은 새끼줄 혹은 철사망을 쳐 국회의원은 물론 신문기자마저 출입이 금지되었으니 여타의 사실은 추측에 맡긴다.
3. 이날 상오 4시 반부터 자유당 완장부대와 중무장한 경찰관의 삼엄한 포위로 인하여 유권자라 할지라도 투표소에 근접키 곤란하고 법적으로 보장된 투표참관인의 신분마저 부인되어 그 출입이 저지되고, 투표 5분전에 입장이 허용되었으며 사복경찰관은 그 이전에 장내에 100미터 이내에 배치되어 있었다.
4. 또한 그들은 정각 7시를 기해 소정의 번호표를 소지한 유권자라 할지라도 자유당 측에서 할당 배부한 시간제 투표일람표에 상이(相異) 되었을 경우에는 그 투표가 거부되고 소정시간까지 찬바람을 맞으면서 떨고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5. 3인조 편성부대는 10조, 즉 30명으로 편성된 1개 소대단위로 인솔되고, 편대인즉 여자만을 편대, 남자만을 편대, 혹은 혼성부대 등으로 인솔되어 투표소 문전에 이르러 역시 정체불명의 완장부대의 지휘를 받는 형편이며
6. 투표장 내의 투표소의 상황인즉 1개 투표구 당 투표함 5개, 기표소 6개 등 소위 낭하식(廊下式) 투표소를 설치하여 비밀보장보다 상호 합의하여 기표하고, 반대로 접어서 투표함에 투입하는 동시에 일련번호표를 선거위원장에게 제출하면 선거위원장은 일련 번호표를 자기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특정 유권자에게 배부하였으며 뒷문에는 사찰형사가 모조리 감시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7. 한편 여사한 사실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민주당의 참관인에게 시정은 고사하고 구타 출혈까지 이른 난자(亂刺)한 사태가 발생하였으니 이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며 선거를 포기한다.
출처 :『조선일보』1960. 1. 23 석1면 ;『동아일보』1960. 1. 24 조1면
이로서 영주 재선거는 자유당 후보의 단독 선거가 되고 말았다. 단독선거였지만 공개투표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자유당의 완장을 찬 완장부대와 카빈총을 멘 무장경찰이 투표소 주위를 지켰고, 3인조로 조직된 유권자들은 기표소에 들어가 표를 찍고 뒷사람에게 확인시킨 다음 투표함에 넣었다. 동원된 완장부대는 일일이 번호가 기입되어 있었고 매우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은 근처의 봉화, 안동, 예천 등지에서 22일 밤부터 23일 새벽에 몇 대의 트럭을 타고와 풍기(약 600명)와 영주(약 2천 명) 지역에 투입되었다.
이처럼 자유당 후보의 단독선거가 치러진 영주는 일사천리로 선거를 진행하고 오후 5시에 투표를 마감하였다. 오후 8시부터 개표를 시작하였는데 예상대로 자유당의 이정희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앞섰다. 개표에는 민주당과 무소속 참관인이 참석하지 않았고 자유당 참관인과 자유당 완장부대만이 자리를 지켰다.『조선일보』1960. 1. 23 석1면, 1960. 1. 24 조1면, 석1·3면 ;『동아일보』1960. 1. 23 석1면, 1960. 1. 24 조1·3면,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