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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의 돌팔매질과 경찰의 진압

민주당 사무실 앞으로 몰려드는 시민들은 더욱 늘어났다. 이들은 스리쿼터가 달린 방향인 남성동파출소 쪽으로 밀려갔다. 시위 대열이 남성동파출소 앞에 이르렀을 때, 대기하고 있던 소방차가 시위대 선두에 선 학생들을 향해 소방호스로 물을 뿌렸다.시위 대열에 참가한 군중들의 80%가량 은 11세부터 20세가량의 학생 및 청소년들이었다고 한다(『동아일보』1960. 3. 17 조3면).이에 시위대는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돌을 주워 던지기 시작했다. 경찰서장이 민주당 사무실의 마이크를 잡고 시민의 진정과 해산을 요구하였으나 시민들은 해산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돌팔매질은 파출소와 그 옆에 있던 자유당 마산시당을 향해서도 계속되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무장경찰들은 시위 주동자로 보이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파출소로 끌고 들어갔다. 이때 스리쿼터 1대가 달려와 녹색 제복을 입은 반공청년단원 10여 명이 내려 시민들을 몽둥이로 무차별 폭행하였다. 어떤 사람이 참다못해 “저놈들 죽여라!”고 외치자 시민들은 돌로 대항하였다. 그러나 훈련된 경찰과 반공청년단들의 완강한 진압으로 오후 6시 경조화영 편, 29-30쪽 ;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95쪽. 일부 기록은 오후 5시 경으로 기록하고 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125쪽 ; 대한변호사협회, 819-820쪽). 시위대는 해산되었다.『마산일보』1960. 3. 17 2면 ;『동아일보』1960. 3. 16 석3면, 1960. 4. 1 조3면 ; 조화영 편, 29쪽 ; 안동일·홍기범 공저, 124쪽 ;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94-295쪽.동아일보에는 시위대가 민주당 사무실 앞에서 10여 명의 반공청년단원에게 습 격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사에 따르면 반공청년단원들이 시위대의 돌팔매에 도주하고 난 이후에 시위대가 남성동파출소를 향해 행진했다고 한다(『동아일보』1960. 4. 1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