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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동파출소 앞에서 경찰 발포로 사상자 발생

해산된 것으로 보이던 시위대는 오후 7시경 다시 오동동 민주당사 앞에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청년 학생들과 일부 시민들은 삽시간에 동보극장에서 민주당 시당부에 이르는 길을 메웠다. 번화가인 이곳은 시위군중보다도 구경나온 사람이더 많았다. 7시 30분 경이 되자 400-500명에 달하던 군중은 곧 1천여 명이 되었다. 몇몇 청년들이 “파출소로 가자!”고 외쳤다. 군중은 움직이기 시작하여 불종거리를 거쳐 남성동파출소 쪽으로 행진하였다. 청년들이 맨 앞에 서고 수많은 학생들이 뒤따르면서 대규모 행렬 이 되었다. 시위대가 남성동파출소에 이르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소방차가 물을 뿌려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시위대는 “부정선거를 즉시 중지하라!”고 외치면서 남성동파출소를 포위하고 돌을 던졌다. 여학생들은 근방에서 돌을 나르고 주로 남학생들이 그것을 받아서 던졌다. 그러던 중 전기가 꺼져 시내는 암흑으로 뒤덮였다. 소방차는 물론이고 남성동파출소의 창문과 기물 등이 시위대의 돌팔매에 파손되었다.
경찰은 오후 8시 무렵 돌을 던지는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다. 이어진 경찰의 실탄사 격으로 앞에 섰던 고등학생 한 명이 쓰러졌다. 경찰의 발포에 극도로 흥분한 군중은 더욱 격분하여 “부정선거 다시 하라! ”는 구호를 수 차례 외쳤다. 더욱이 파출소를 비롯하여 자유당 시당부도 습격하여 사무실 집기, 비품 등을 때려 부수고 공문서 서류 등을 찢었다. 경찰의 발포와 시위대의 투석은 마치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전면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총상을 입었다. 실탄사격이 계속되자 시위대의 일부는 북마산 방면으로, 다른 일부는 개표장소인 시청으로 밀려갔다.『동아일보』1960. 3. 17 조3면 ; 대한변호사협회, 820쪽 ; 이강현 편, 51-52쪽; 김재희 편, 71-72쪽 ; 안동일·홍기범 공저, 125-126쪽 ; 마산일보사,『민주혁명 승리의 기록』, 1960, 30쪽 ; 현역일 선기자동인 편,『사월혁명 : 학도의 피와 승리의 기록』, 1960, 52쪽 ;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96-297쪽
그 시각 남성동파출소 앞에서 나온 사상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사망자 : 오성원
•총상자 : 강윤경, 강형준, 구본수, 김경춘, 김기철, 김동섭, 김라자, 김생종, 김이철, 김정수, 김종근, 문채영, 박정명, 박판규, 서동호, 이동섭, 이신자, 정갑주, 조승래, 진병열, 최명준, 한 압, 황 청 등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