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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훈련병 약 200여 명 시위 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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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밤 11시 경『동아일보』1960. 4. 6 석3면.
일부 기록은 밤 11시 20분 경으로(『조선일보』1960. 4. 5 석3면), 반면 일부 기록은 밤 12시 경으로 기록하고 있다(『동아일보』1960. 4. 6 조3면, 1960. 4. 7 석3면).
진해에 있는 해병 제 6연대 예비역 훈련병 3개 중대 200여 명『동아일보』1960. 4. 6 조3면.
일부 기록은 100여 명으로(『동아일보』1960. 4. 6 석3면), 반면 일부기록은 400여 명으로 기록하고 있다(『조선일보』1960. 4. 5 석3면).
이 집단 탈영하여 시위를 감행했다. 이들은 “가자 가자 부수자”, “배고파서 못 살겠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약 5킬로미터 떨어진 시내까지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 소식을 접한 3군 헌병들과 장교들은 급히 출동해 시위 중이던 훈련병들을 원대로 복귀시켰다. 해군 측 및 관계자들은 훈련병들이 시위를 벌인 이유나 전기 구호 이외의 시위대가 외친 구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시위발생 자체에 대해서도 극비에 붙였다.『조선일보』1960. 4. 5 석3면 ;『동아일보』1960. 4. 6 조3면, 석3면, 1960. 4. 7 석3면.
『동아일보』는 시위 원인에 대해 얼마 전 훈련병 일부가 허가 없이 외출하여 음주를 했다는 이유로 교관에게 무리한 기압을 받은 것에 대해 사령관에게 항의를 제기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추측보도 했다(『동아일보』1960. 4. 6 석3면, 1960. 4. 7 석3면). 『조선일보』는 해병대의 시위에 모종의 정치성이 있지 않나 하여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조선일보』1960. 4. 5 석3면).
분류
시위 상황 / 진해 196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