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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군청 회의실 습격

오후 5시 경 도립병원 앞에 모인 인파를 헤치고 ‘민주당 국회의원’이라고 쓴 지프 한 대가 나타났다. 지프에서 내린 민주당 윤보선 의원은 간호고등학교에서 가져온 책상 위에 올라가 “이번 사태를 평화적으로 수습하기 위해 왔다”는 내용의 짧은 연설을 했다. 시민들은 “민주당 만세!”,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다. 오후 5시 30분 경, 군중 속에서 몇몇 학생들이 “학살경찰 처단하라!”, “협잡선거 다시 하라" 고 외쳤다. 이에 “학생들이 해도 너무 한다”고 말한 한 여인이 학생과 시민들에 의해 구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후 6시가 넘어서자 귀가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길거리에는 야간통행 금지시간 연장 공시가 나붙기 시작했다. 진주와 부산을 운행하는 시외여객버스들은 갑작스러운 야간통행의 제한으로 발이 묶였다. 오후 7시 정각 통금 사이렌이 울렸다. 그러나 시민들은 통금 사이렌이 울리자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곳곳에서 모인 군중들은 경찰서를 향하는 시위대, 남성동파출소 쪽을 향하는 시위대, 창원군청을 향하는 시위대 등 별개의 시위행렬을 이루었다.『한국일보』1960. 4. 13 조3면 ;『서울신문』1960. 4. 13 조3면 ;『마산일보』1960. 4. 14 2면 ;『동아일보』1960. 4.13 조3면, 석3면 ; 김재희 편, 81-82쪽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381쪽
약 500명의 시민들은 창원군청으로 몰려가 군수실을 에워쌌다. 군수실에서는 오후 6시 경부터 신도성 경남도지사, 이정용 경남경찰국장, 치안국 경비과장 등과 윤보선, 김용진, 정헌주, 박찬현, 김동욱, 조일재, 김재곤, 박충모 등 8명의 민주당 수습대책위원들이 모여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민주당 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5개 조항을 제시했다.
1. 3·15 당시 피살당한 유가족의 위로가 부족하였으며 부상자의 구호가 불성의 하였으니 이를 시정할 것
2. 발포책임으로 구속된 5명의 경찰관 이외에 더 많은 경찰이 구속되어야 할 것이며 고문경찰도 즉시 구속되어야 할 것
3. 행방불명자에 대하여 경찰은 아는 대로 밝혀야 할 것
4. 김주열군의 비참한 시체에 대하여 그 사인을 밝히는 한편 범죄수사도 해야 할 것
5. 이번 제2차 시위 역시 그 원인이 당국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모든 가담자를 불문에 붙여야 할 것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2천-3천 명으로 늘어났다.시민들은 “더 기다릴 수 없다 빨리 태도를 결정하라”, “우리를 살리든지 죽이든지 마음대로 하라”, “집어치워라”고 외치며 아우성이었다. 오후 7시 쯤 부터는 회의장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몇몇은 회의장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결국 회의는 결렬되어 도지사, 경찰국장이 신문사 지프로 피신하고 민주당 의원들만 남자 시위대는 태극기와 “부정선거 다시 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경찰서를 향했다.『마산일보』1960. 4. 14 2면 ;『한국일보』1960. 4. 13 조3면 ;『조선일보』1960. 4. 13 조3면 ;『동아일보』1960.4. 13 석3면 ; 조화영 편, 55-56쪽 ; 이강현 편, 58쪽 ; 마산일보사, 61쪽 ; 김재희 편, 82-83쪽 ;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3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