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Embed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URL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이메일 공유
마산 시내 각 고등학교 학생들, 시위 감행
1. 법질서를 파괴하는 일절의 행동을 중지할 것
2. 오후 7시부터 익일 오전 4시까지 야간 통행을 금지할 것
3. 위 각 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는 법에 의하여 엄중 조처할 것임
경남경찰국장 이정용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마산공고 학생들의 뒤를 이어 창신고등학교 200-300여 명, 마산여고 400여 명, 마산고 500여 명의 학생들도 시위를 감행했다.
창신고 학생들은 마산공고 학생들의 시위소식을 듣고 운동장으로 몰려나왔다. 교사들과 규율부 학생들이 정문을 막고 있었고 후문도 이미 봉쇄된 상태였다. 일부 교사는 목총을 들고 다니며 학생들을 위협했다. 학생들은 담을 뛰어넘기도 하고, 교사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교장은 학생들에게 “어디까지나 제군들은 학생의 신분인 만큼 시위만은 질서를 지켜가며 평화적으로 조용히 끝내주기 바란다”라고 당부하며 교문을 열어주었다.
마산여고의 교문도 열렸다. 학교 측은 여학생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하겠다는데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이 맨발로라도 나가 시가행진을 하자고 선동하자 학생들은 공감하는 듯 함성을 질렀고,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교사들은 “질서만은 분명히 지켜줘야 한다”며 교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마산여고 학생들이 시가행진에 나서자 마산여중 학생들도 가담하였다.
제일여고 학생들도 교사들의 저지에 완강히 저항하며 시위에 동참했다. 몇몇 학생들이 닫힌 미술실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플래카드와 피켓을 만들었다.“협잡선거 물리치고 공명선거 다시하자”, “경찰은 학생의 살상에 책임져라”라는 구호를 적었다. 선두 학생들이 들고 나온 플래카드는 교사들에게 빼앗겼다. 이를 예상한 여학생들은 생활관에 숨겨둔 플래카드 2개를 다시 들고 나왔다. 제일여고 학생 간부들은 1, 2학년은 학교에 남아 수업을 받기로 하고 3학년 학생들만 시위에 참가하기로 했다. 학교 측의 승낙을 받은 3학년 학생들은 교문을 나서 신마산 거리로 행진하였다.
마산고 학생들은 3교시가 끝나자 책가방을 들고 운동장에 모였다. 학생들은 상급생부터 시위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3학년 학생들부터 교문을 나서 스크럼을 짜고 시가를 행진했다. 마산고의 교장은 선두에 서서 학생들을 인솔했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호위하다시피 하여 시위행렬의 좌우로 포진해 함께 행진했다. 500여 명의 마산고 학생들은 이미 행진에 나선 창신고, 마산여고 등의 학생들과 합류했다. 이들은 “부정선거 다시 하라”, “살인경찰 처단하라”고 외쳤다. 학생들은 도립병원에 도착해 시체실에 안치된 김주열 시신 앞에 묵념한 후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앞에서 학생들은 연좌농성을 벌였다.“김주열을 죽인 경찰을 밝혀라!”, “살인경찰 처단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마산고의 학생대표는 ‘우리 학생들은 어떤 정당의 지령이나 일반적인 선동에 의하지 않은 자발적인 시위를 했다. 김주열 군의 사체가 잔인무도하게 살해되어 있음을 용인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학생들은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 “학살경찰 처단하라”등의 구호를 외치고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 한 후 오후 3시 20분 경 해산하였다.
학생들의 시위가 잇따르자 1만여 명의 시민들도 시위에 합세했다. 무학국민학교 앞 간선도로는 시위 군중으로 가득 찼다. 경찰은 무장을 풀고 시위행렬을 저지하려하지 않은 채 연도(沿道)에 늘어서 있었다.
오후 2시부터는 마산상고 학생들이 뒤늦게 시위에 가담했다. 마산상고 학생들은 2학년이 시위대의 선두에 나서고 3학년은 그 뒤를 이어 나서기로 했다. 1학년은 시위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일찍 하교시켰다. 그러나 2, 3학년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자 1학년 학생들이 정문 앞에 모여 있다가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열이 형성되자 마산상고 학생들은 미리 준비해 놓았던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마산상고 교사들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위행렬을 호위했다. 마산상고의 시위는 직원회 및 사친회의 결의를 거쳐 정식으로 학교 측에서 허가한 것이었다. 1천여 명의 학생이 시위에 나서자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경찰도 제지하지 않았다. 시위행렬은 오동동파출소와 남성동파출소를 경유하여 오후 3시 경 마산도립병원 앞에 도착했다. 마산상고 학생들은 도립병원에서 김주열을 애도하는 의식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묵념을 한 후 교가를 부르고, 문예반 학생들이 지은 애도사를 낭독했다. 학생대표는 병원 안으로 들어가 태극기에 덮여 꽃다발에 쌓여있는 김주열의 주검 앞에 묵념을 하고 나왔다. 마산간호고등학교 학생 100여 명도 마산상고 시위대에 합류하여 애도 의식에 참여했다. 오후 3시 40분 경 마산상고 학생들이 해산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학생들의 각 학교별 시위는 대부분 해산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시위행렬을 뒤따라온 시민들은 여전히 도립병원 주위에 운집해있었다.
- 분류
- 시위 상황 / 마산 19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