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서울 입성
계엄군 작전참모들은 각각 중앙청을 중심으로 하여 경무대를 비롯한 종로 이북지역, 서울운동장을 중심하여 시내의 동부지역, 덕수궁을 중심하여 그 밖의 전역을 관할하기로 하고, 작전지도에 푸른 줄을 그어 서울 시내를 3등분하였다. 이로써 서울운동장에 1개 연대, 덕수궁에 1개 연대, 경복궁에 1개 연대가 각기 배치되었다. 이를 위해 1진은 청량리·신설동·돈암동으로 하여 성북경찰서 주변을 진압하면서 창경원으로 빠져 안국동·중앙청으로 행할 예정이었다. 제2진은 동대문·종로로 하여 동대문경찰서 주변을 진압하고 덕수궁으로 행하고, 3진은 왕십리·성동경찰서를 거쳐 서울운동장 주변을 진압하고 운동장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1진이 2진 코스로 운행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로써 서울운동장 주변의 무장시위대는 진압되지 않은 성북경찰서 근처의 시위대원들과 합류하여 장시간 성북경찰서를 습격할 수있었다. 이들은 중앙청으로 갔던 부대가 다시 3대의 탱크와 더불어 성북경찰서로 전진해서야 대체적으로 진정되었다.
군은 이와 같은 혼란이 온 이유가 경찰의 끊임없는 구조요청의 비명과 부정확한 보고와 정보, 그리고 사태의조기수습을 위한 현지 파견자들의 활동으로 인해 초래된 것으로 보았다.
자정 무렵, 15사단장 조재미 준장은 김정렬 국방장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20일 새벽 2시 경, 송요찬 계엄사령관은 사태가 일단락되자 중앙청에서 철야 대기 중인 국무위원들을 만나 보고하고, 거리를 순찰한 후 다음과 같은 긴급명령을 내렸다.
一. 아침의 통행금지 시간이 해제되기 전에 각 처에 배치된 탱크와 병력을 신속히 철수하여 시민의 눈에 띄지 않는 부대 본부로 집결케 하고, 낮에는 수 명의 보초병만을 남기고 일절 외출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