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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와 한양대학교 공대 시위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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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아침, 경희대학교 학생 수 백 명이 청량리 본교 운동장에 집결하여 시위를 준비하였는데,경희대는 19일 오후 3시 경 부터 법대생 300명이 중심이 되어 을지로, 미도파, 화신 앞 등에서 밤늦게 까지 산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20일에 집단시위를 감행하기로 모의하였다(이문종, 「경희대학」, 사월혁명청사편찬회, 『민주한국 사월혁명청사』, 성공사, 1960, 516쪽).군 탱크와 보병 및 경찰기동대가 한길로 빠지는 다리목을 지키고 있어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못하였다. 이들의 시위계획을 사전 입수한 군은 탱크와 2개 중대를 연대장이 직접 인솔하고 가서 학생들에게 해산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학생 대표 한 사람이 나와서“우리들을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 모든 학생들이 다 일어나는데 우리만 빠진다면 우리들은 청사에 그 이름을 길이 더럽힐 것이요, 우리 학교의 불명예는 영구히 씻을 길이 없을 것”이라며 사정을 하였다. 결국 연대장과 이들 사이에는 협정이 성립되어 군대는 그들이 100미터만 시위하고 해산한다는 서약을 받고 이를 묵인하였다. 군대와 학생들은 이 협약을 지킴으로써 사태를 일단락 지었다. 이어 군은 한양대학교 공대 학생들 역시 설득에 의한 방법으로 해산시켰다.육군본부군사감실 편, 『4293년판 육군연감』, 4294(1961), 43쪽.
군은 학생들의 예정된 시위를 설득하여 미연에 방지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자신감을 얻고 급기야는 실탄을 전부 회수하고 공포탄으로 대처하는 조치를 취하였다고 한다.
분류
시위 상황 / 서울 19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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