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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부통령 사퇴

23일 오전 11시 30분, 장면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은 부통령 사임서를 발표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였다. 장면 부통령은 이날 긴급히 소집된 민주당 중앙상무위원회 석상에서 사퇴의사를 밝힌 후 곧 사임서를 국회사무차장에게 접수시켰다. 그는 이날 사퇴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오래 전부터 고려해 온 것이다. 3·15정·부통령선거의 불법적 무효를 주장하는 전 국민과 학생들의 울분을 대변하고 행정부에 일대 경종을 울리기 위해 사퇴한다”고 말하였다.『동아일보』1960. 4. 23 호외 ;『조선일보』1960. 4. 23 호외 장면 부통령 사임서 1. 본인은 오늘로서 부통령직을 사퇴한다. 3·15 불법선거로 인하여 3천만 동포의 울분은 드디어 절정에 달하고, 마침내 민족의 정화(精華)인 청소년 남녀들이 불법과 불의에 항쟁하다가 총탄에 쓰러져 그 고귀한 피가 이 강산을 물들이게 됨을 볼 때에 하루라도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는 비통한 심경에 다다른 것이다. 동시에 본인의 사퇴로써 권력에 도취하여 압제와 폭정을 계속하는 이승만 정부에게 경종을 울리고 나아가서 자유 민주의 정신을 이 땅에 소생시켜 국가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2. 본인이 국민 여러분의 지지로써 부통령에 당선된 이래 헌법이 본인에게 부여한 책임을 수행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이를 수행할 기관들은 이승만 정부의 고의적 방해로 인하여 그 구성조차 보지 못하였으며, 그 외에도 독재화하여가는 정치, 파탄되어가는 국민경제, 혼란일로의사회상, 고립되어가는 외교 등을 시정하기 위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행정부에 대한 충고를 하였고,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함도 수 차였으나, 그때마다 거부당하였으며, 부득이 서면으로 한 본인의 진언도 아무런 반향을 보지 못하였다.
금년의 선거를 앞두고 이 박사의 4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유당과 정부는 재작년 12월에 신성한 국회의사당에서 야당의원을 폭력으로 축출, 감금한 후 국가보안법과 지방자치법을 개악하였으며, 언론기관과 야당활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고, 평화적 집회 및 시위의 자유에 대한 불법제한을 더욱 강화하는 등으로 부정선거의 복선을 갖추었고, 헌법정신에 배치되는 3월 조기선거, 유령유권자 조작, 입후보등록의 폭력방해, 관권 총동원에 의한 유권자 협박, 야당인사의 살상, 투표권 강탈, 부정 무더기표 투입, 3인조공개투표, 야당참관인에 대한 각종방해, 부정개표 등으로 3·15 정·부통령선거에서 97퍼센트 투표율과 90퍼센트 내외의 여당투표를조작 발표함에 이르러서는 정권욕의 불법수단이 극한에 달하여 민주선거제도는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3. 이러한 부정·살인 선거에 대하여 국민의 분열은 가슴에 사무쳤고, 진리와 정의에 민감한 청소년학도들의 시위운동은 전국 각지를 휩쓸게 되었다. 집권자의 사병화한 경찰은 평화적 시위 학도들에게 총탄을 퍼부었으며, 그도 부족하여 잔학한 보복살상과 고문을 무수히 감행하여 국민을 격앙케 하였고, 또다시 총탄을 퍼붓는 등 무단(武斷)정책을 사용한 결과 드디어 법적 요건에 어긋나는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는 수치스러운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중대위기에 즈음하여 이 대통령은 3·15선거의 불법과 무효를 솔직히 시인하고 또 12년 간 누적된 비정(秕政)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물러서야 할 것이다.

4. 본인은 비록 부통령의 직을 떠난다 할지라도 민주투쟁전열에서 국민들과 더불어 최후승리의 날까지 분투할 것을 맹세한다.

이번의 전국학도총궐기운동은 우리 역사상의 새로운 시기를 획하는 것으로서 3·1독립운동에 비견할만한 금자탑이며, 이제로부터 민족정기와 자유기백은 온갖 압제세력을 물리치고 광명의 천지를 개척하여 조국의 민주건설과 반공통일을 완수하게 될 것으로 믿는 바이다.

끝으로 민주수호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민족의 꽃들”에 대하여 그 명복을 빌며 명예의 부상자 여러분의 쾌유를 기원한다.
출처 :『조선일보』1960. 4. 23 호외 ; 석2면 ;『동아일보』1960. 4. 24 조1면 ;『서울신문』1960. 4. 23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