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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시위대, 도지사와 경찰국장의 책임 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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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이승만 대통령사퇴성명 방송이 있자 시민들은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노년층에서는 이승만이 가엾게 되었다고 동정을 표하기도 하였으나 젊은 층에서는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의 나쁜 요소는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건설에 대한 새로운 결의를 표하였다.『동아일보』1960. 4. 27 석4면
대전에 소재지가 있는 충남대학교를 비롯하여 시내 남녀중·고교 운영위원장들은 연석회의를 갖고 시위를 결의하였다. 오후 4시 경, 대전의 학생 약 5천 명은 한밭중학교 교정에 모여 결의문과 구호를 낭독하였다.
대전 학생들의 4·26 결의문과 구호 1. 자유당과 같은 독재정치를 배격한다.
2. 민주주의 기반 닦아 자주독립 이룩하자.
3. 쓰러진 국민주권 정의로서 일으키자.
4. 한희석을 처단하고 최인규를 체포하라.
5. 발포자와 그 명령자를 처단하라.

구호
1. 현(現) 국회의원도 모두 사퇴하라.
2. 학원에 자유를 보장하라.
출처 :『대전일보』1960. 4. 27 3면 ; 조화영 편,『사월혁명투쟁사 : 취재기자들이 본 사월혁명의 저류』, 국제출판사, 1960, 287쪽
오후 4시 20분 경, ‘민권의 승리’를 구가하는 충남대학교 학생 2천여 명을 선두로 각 학교 학생들은 학교별로 대열을 지어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연도를 헤치며 역전으로 향하였다. 이들은 목척교를 지나 시청 쪽으로 나아가면서 채택된 결의문과 구호를 절규하였다.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만세소리와 박수소리는 우레와 같았으며, 시민들의 합류로 시위대의 수는 계속 늘어만 갔다.
대전지구 계엄사무소 당국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헌병과 경찰로 혼성된 무장경비 병력을 급파하여 시위대의 양편을 경비하면서 같이 행진하였다. 시위대열은 시청 앞 로터리에서 대흥동과 대전고등학교 앞을 지나 오후 5시 10분 경 도청 앞 광장으로 밀려들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①김학응 지사와 전장환 경찰국장, 정인권시장은 즉각 사퇴하라, ②정부가 임명한 각 기관장들도 사퇴하라, ③유성온천에 와 있다는 이기붕을 충남에서 축출하라, ④계엄령을 즉시 해제하라, ⑤학교를 즉시 개교케하라 는 등의 결의를 하였다. 그리고는 지사의 답변을 듣기 위해 각 학교에서 학생대표 1명씩을 선출하여 대표단을 구성한 다음 이들을 지사실로 파견하고 남은 학생들은 연좌시위에 들어갔다. 조금 후 김 지사와 전 경찰국장은 지사실 베란다에 나타나 확성기를 통하여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사퇴할 것을 천명하고, ②④⑤항은 우리들의 소관사무가 아닌 것이며, ③항은 사실무근한 일이다”고 해명하였다. 이에 시위대는 시청광장으로 몰려와 정 시장으로 부터 “3·15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겠다”는 확약을 받았다.『대전일보』1960. 4. 27 2면 ; 오천균, 「너무나 길었던 그 해 4월」, 3·8민주 의거 기념사업회·대전충남 4·19혁명 동지회, 『3·8민주의거』, 2005, 143- 144쪽 ; 조화영 편, 286-289쪽 ; 현역일선기자동인 편, 154-155쪽 ;『조선일 보』1960. 4. 27 조2면
분류
시위 상황 / 대전 19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