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 각파는 전당대회 연기 문제를 놓고 25, 6일 두 차례에 걸쳐 김홍일, 김대중, 유진산, 양일동 씨 등 4자회담을 열고 협상을 벌였으나 강행을 주장하는 유 씨와 오는 12월로의 연기로 맞선 나머지 계보들 간의 이견이 조정되지 않아 결렬, 유진산 씨계는 자파의 대의원들만으로 26일 낮 12시 40분 서울 시민회관에서 대회를 강행하여 유진산 씨를 당수로 선출했다. 이에 대해 김홍일, 김대중, 양일동 씨 등 나머지 계보에서는 즉각 불법무효라고 주장, 신민당은 사실상 분당 위기에 들어섰다. 이날 회의에서 김영삼계는 당수 선출에 반대했고 최형우 씨가 의사진행발언을 얻으려 했으나 이를 봉쇄당함으로써 대회는 한동안 소란했다. 이날 회의는 당수와 사무총장, 조직국장 등이 참석하지 않아 대회 진행 과정에서 당수 치사는 생략되고 당무 보고 등은 사무차장 등이 대독했으며 유청전당대회 의장이 대회 연기를 공고하고 불참했는데 이대우 부의장을 의장서리로 임명, 대회가 강행됐다.『동아일보』 1972.9.26. 1면; 『경향신문』 1972.9.26. 1면; 『서울신문』 1972.9.26. 1면; 『한국일보』 1972.9.27. 1면; 『조선일보』 1972.9.27. 1면; 『중앙일보』 1972.9.26. 1면; 『매일신문』 1972.9.27. 1면; 『영남일보』 1972.9.27. 1면; 『국제신보』 1972.9.26. 1면; 『충청일보』 1972.9.28. 1면; 『민주전선』 1972.9.30.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