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오후 8시 30분부터 마산 시내 창동을 중심으로 북마산 파출소, 극동예식장, 분수로타리 등 시내 중심가에서 경남대학 및 산업전문대학교 학생들과 고등학생, 수출자유지역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시민들이 참가하여 약 1,500여명이 통금 시간 연장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 대규모 군중 시위를 전개했다. 18일 밤부터 시내에 인근의 창원, 진해, 함안 등지에서 경찰 병력이 넘어오고 2개 중대의 군인까지 투입되어 19일 밤 시내에 약 1,500여명의 병력이 시내에 주둔하고 있었다. 경찰은 오후 10시 30분부터 분수로타리, 오동동 일대, 수출자유지역 정문, 북마산 회성교 일대와 경남학생과학관 등의 지역에서 시위 진압을 개시하여 20일 오전 3시에 완료했다. 18~19일 이틀간 시위로 트럭 6대분(유리조각이 2,000kg, 판자류가 약 500kg, 벽돌류 2,600kg, 기타 돌 10,000kg)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오물 수거분이 발생했다. 시위로 인해 약 200여명이 연행되었다. 경남대생 정주신, 한재섭, 양성주, 경상고등학교 3학년 서보원, 이창곤, 박태한, 김영환, 창원고등학교 3학년 박정길, 악사 박요문, 공원 진경곤, 무직자 정익철, 회사원 임재부, 양복점 전영호, 복장사 남수, 공원 정효영, 점원 김용수, 김명수, 노동자 배동갑, 종업원 김경태, 상인 조용탁, 상인 윤정오, 고아 장길영, 창원 복지아파트 건축공 노영식(특별조사), 철공소 경영인 김흥곤 등 24명이 구속되었다. 경찰은 진압대 측 인명 피해로 군인 1명 부상, 전경대 1명 중상, 경찰 5명 경상 등 총 7명이 발생했으며, 학생 및 민간인 중 약 22명의 부상자 및 환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은진, 『1979년 마산의 부마민주항쟁 육군고등군법회의 자료를 중심으로』, 불휘, 2008, 250~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