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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청소부, 퇴직금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 발송
한편, 협조요청을 접한 청주도시산업선교회는 청주기독교협의회에 협조를 의뢰, 동 협의회로 하여금 청주시에 진정케 하였다. 그러나 진정에도 아무런 회신이 없자 협의회는 7월 30일 재차 진정서를 발송하였는데, 이에 8월 3일 청주시는 “이 문제를 충북도지사에 질의 중에 있다”고 회신하였다. 이같은 회신에도 불구하고 8월 5일 청소부 정운탁이 작업 중 작업모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해고를 당하는 등으로 청소부들의 노동여건은 극도로 불안정하고 열악한 상태를 유지하였다. 이에 이진옥 목사 등 청주 교계대표들이 8월 16일 시장을 방문하고 8월 24일에는 청소부대표들이 시장을 방문, 처우개선을 요청하였으나 시장은 “시정하도록 하겠다”는 미온적인 발언만 할 뿐이었다.
당국이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자 다수의 청소부들과 성직자들이 매주 금요일 산업선교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예배를 드린 후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요구는 근로감독관에 의해서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8월에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던 청소부 정운갑과 1972년 7월 청소과 내의 비위사실을 따지다가 역시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바 있는 이정운의 퇴직금을 청구하는 것으로부터 문제해결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1973년 10월 11일 청주시장에게 퇴직금 청구신청서를 제출하고, 동시에 충청북도 노동청 근로감독관에게는 퇴직금 구제신청서를, 대한법률구조협회 청주지부에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한편 청주도시산업선교회가 소속한 예장 충북노회는 11월 7일 제49회 노회(노회장 김경해)에서 청소부들을 지원하기 위한 진정서를 관계요로에 보내기로 결의하고 즉석에서 참가회원 전원이 진정서에 서명날인하였다.
청주 교회들의 이같은 지원과 협조 속에서 11월 13일 오후 8시 청소부 60여 명은 동산교회에서 최병곤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총무의 인도로 예배를 본 후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하고 무기한 단식키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당국은 이들을 강제해산하는 한편, 이같은 모임을 주동하였다는 이유로 최명식, 유재항 양인을 11월 30일자로 해고하였다. 이같은 억압수단을 강구하면서 12월 5일 청주시가 발표한 임금인상 내역은 일당을 600원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정부가 발표한 전국 공무원 임금인상율 30%에 미달(25%)하는 것이었다. 이에 청소부들은 임금수령을 거부하였고, 해고된 최명식, 유재항의 가족들은 12월 5일 복직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시위를 벌이다 즉결에 넘겨져 2일간의 구류를 살기도 했다.
사태가 악화되는 가운데 12월 8일 청주 기독교교회협의회 회원들은 또다시 시장을 방문, 이번에는 해고된 사람들의 복직을 중심으로 청소부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였고, 해고된 청소부들은 나름대로 호소문을 작성, 각계에 발송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한편 청소부들의 요구가 합법적이고 정당함을 인정해 왔던 권무태 근로감독관은 청소부들과 기독교회의 진정, 호소가 계속되자 12월 19일 청주시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하였고 1974년 1월 14일 재판개시가 확정되었다. 이처럼 문제가 법정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자 청주시청은 최명식, 유재향 양인을 1월 10일 무허가 철거반에 복직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원위치로의 복직을 요구하며 가족서명의 결의문을 시장 앞으로 보내는 등으로 시당국의 정정당당한 문제해결을 촉구하였다. 그들은 결의문에서 해고된 이후의 임금도 지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요구가 2월 10일까지 관철되지 않을 경우에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하였다.
결국 청주시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월 9일 청소부로 재복직시켰으며 2월 23일에는 앞서 문제되었던 정운탁, 이정운 양인의 퇴직금이 지불됨으로써 1973년 7월 이후 8개월 동안 지속된 청소부들과 청주시청과의 싸움은 청소부들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청소부들의 일당은 700원으로 인상되었고, 근로기준법에 의거하여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유급휴일제의 혜택도 볼 수 있게 되었다.
-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1973-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