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인사 30명, 헌법개정청원운동본부 결성
헌법개정청원운동본부는 오늘의 사태는 “경제의 파탄, 민심 혼란, 남북긴장의 재현이란 상황 속에서 학원과 교회, 언론계와 가두에서 일고 있는 자유화의 요구”로 요약된다고 말하고 “그러나 현행헌법은 그 개정의 발의권이 사실상 대통령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라고 지적, 대통령에게 현행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인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된 서명운동 방법은 ①헌법개정청원운동본부의 서명자 30명 각자가 본부이며 ②민족의 성원이면 누구든지 대학생 연령층 이상 서명하여 연령 및 시도군을 명기, 개인 혹은 집단으로 서명자 30명 중 누구에게나 보내주면 된다고 밝혔다.
이날 장준하는 “이 운동은 현행 청원법에 의한 청원은 아니며 10여 일 전부터 학원, 종교계 등에서 음성적으로 벌였던 서명운동을 지금부터 양성화하게 된 것”이라고 밝히고 “현재까지 약 5천 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된 30명의 명단 중에는 지난 13일 재야인사 시국 담화에 참여했던 15명 중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한경직 목사가 빠져 있는데, 장준하는 윤보선 씨는 “전직 대통령으로 현직 대통령에게 청원하는 것은 동양예의상 어긋나는 일로 사양”했으며, 한경직 목사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 서명에서 빠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개정청원운동의 서명자 30명은 ▲장준하(통일당 최고위원) ▲함석헌(종교인) ▲법정(불교 승려) ▲김동길(연세대 교수) ▲김재준(전 한국신학대학장) ▲유진오(전 신민당수) ▲이희승(전 서울대 대학원장) ▲김수환(추기경) ▲백낙준(연세대 명예총장) ▲김관석(대한기독교연합회 총무) ▲안병무(한국신학대 교수) ▲천관우(전 동아일보 주필) ▲지학순(천주교 원주교구장) ▲김지하(시인) ▲문동환(한국신학대 교수) ▲박두진(시인) ▲김정준(한국신학대학장) ▲김찬국(연세대 신학대학장) ▲문상희(연세대 교수) ▲백기완(백범사상연구소장) ▲이병린(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계훈제(‘씨ᄋᆞᆯ의 소리’ 편집위원) ▲김홍일(전 신민당수) ▲이인(제헌의원) ▲이상은(고대 교수) ▲이호철(소설가) ▲이정규(전 성균관대 총장) ▲김윤수(이화여대 교수) ▲김숭경(의사) ▲홍남순(변호사) 등(발표 순)이다.
1974년 1월 7일 이희승, 이헌구, 김광섭, 안수길, 이호철, 백낙청 등의 문학인들은 오전 10시 서울 명동의 코스모폴리탄 지하 다방에서 문인 및 지식인 61명이 서명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성명에서 “대다수 동포들이 빈곤과 압제에 시달리며, 민족의 존망 자체가 위태로운 이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여 문학인들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미래의 한국 문단과 사회에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개헌 서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 날 정부는 개헌 청원 서명운동에 대한 조치로 긴급조치 1, 2호를 선포하였는데,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 헌법 개정 폐지 주장·발의·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로부터 불과 18일만인 2월 25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문인과 지식인들이 포함된 간첩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하고, 이호철, 임헌영, 김우종, 장을병, 장병희 등을 구속하였다. 긴급조치 발동과 함께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과 함께 간첩조작 사건 만들기도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