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 민청학련 배후에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다고 발표
신정보부장은 민청학련의 배후관계를 네 갈래로 나누어 설명했다. ①인혁당 당수로 지하 활동을 하다 복역했던 도예종 등은 1971년부터 1973년 11월 간 경북대 데모를 배후조종, 학생 폭거를 통한 사회주의정권 수립을 기도했으나, 당국의 저지로 실패하자 전 민자통 경희대 위원장 이수병 등을 통해 10.2 서울대 데모를 주도한 이철 등에 접근, 민청학련의 구성과 활동을 배후조종하고 자금지원을 해왔고 ② 재일조선인 총연맹의 비밀조직원 곽동의의 조종을 받은 일본의 『주간현대』 등 주간지 자유기고가인 다짜가와 마사끼(태도천정수·28)와 일본공산당원인 하야가와 오시하루(조천가영·37) 등이 관광명목으로 우리나라를 왕래하면서 이철 등과 접촉, 폭력혁명계획을 지원해왔으며 ③ 좌파혁신계로 복역한 적이 있는 류근일 등은 이들 대학생들에게 자금지원 유인물 원고제공 등 민청학련의 활동을 지원했고 ④ 한국기독학생총연맹 간부들도 민청학련을 지원, 적극 참여키 위해 교회청년연합회를 조직, 4월 반정부데모가 실패할 경우 2단계로 이 연합회가 나서기로 했었다고 밝혔다.
중앙정보부는 또 이철 등 대학생 주모자들이 평소 공산주의서적을 탐독하고 북한의 대남방송을 청취, 그들이 염원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이른바 노농정권을 수립하는 길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다수 학생과 시민의 호응을 얻기 위해 제1단계로 우선 유신체제를 비민주독재로 단정하고 자원파동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정부실책으로 과장함으로써 민주회복 등의 명분으로 반정부세력을 규합하고, 2단계로 4월 3일 전국 주요대학이 일제히 봉기, 청와대 등 정부기관을 점거, 정권을 인수하고, 3단계로 민주연합정부를 수립하고 끝으로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를 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최종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도적 통치기구로서 학생과 사회 일부 불순세력을 중심으로 한 ‘민족지도부’의 결성까지 계획했다는 것이다. 신부장은 이날 민청학련 수사의 중간발표를 하고 국민들은 이같은 단체 관련자를 보면 즉각 수사기관에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관련자 총 60명 명단
▲도예종(50, 대구 삼화건설회장·전인민혁명당당수)
▲서도원(51, 전 민주민족청년동맹위원장)
▲하재완(40, 전민족자일 경상북도협의회 부위원장
▲이수병(36, 삼요일어강습소강사)
▲김용원(39, 경기여고교사)
▲여정남(29, 무직, 배후조종)
▲조영래(26, 변호사)
▲장기표(29, 무직)
▲황인범(25, 장훈중학교 전임강사)
▲곽동의(46, 상업)
▲다찌까와 마사끼(태도천정수·28, 자유기고가)
▲하야까와 요시하루(조천가춘·37, 경기대 일본어강사)
▲이직형(36, 한국기독학생총연맹총무)
▲정상복(30, 한국기독학생총연맹간사)
▲안재웅(34, 한국기독학생총연맹간사)
▲나상기(25, 한국기독학생총연맹간사)
▲서경석(27, 한국기독학생총연맹간부)
▲이광일(24, 한국신대신학 3중퇴)
▲류근일(32, 중앙일보논설위원)
▲이현배(30, 상록학원강사)
▲김효순(21, 서울대 문리대 정치 졸)
▲이철(26, 서울대 문리대 사회 3)
▲유인태(26, 서울대 대학원 1)
▲강구철(20, 서울대 문리대 정치 3)
▲정문화(23, 서울대 외교 4)
▲김병곤(21, 서울대 상대 경제 3)
▲황인성(21, 서울대 문리대 독문 4)
▲나병식(25, 서울대 문리대 국사 4)
▲서중석(26, 서울대 문리대 국사 4)
▲정윤광(27, 서울대 문리대 철학 3)
▲안양로(26, 서울대 문리대 4)
▲제정구(30, 서울대 문리대 정치 4)
▲이근성(23, 서울대 문리대 국사 졸)
▲구충서(21, 단국대 사학 1)
▲김영준(27, 연세대 경제 4)
▲송무호(22, 연세대 경영 2)
▲윤한봉(26, 전남대 축산 4)
▲임규영(21, 경북대 사대 사학 4)
▲정화영(26, 경북대 사회 4)
▲권진관(22, 서울대 문리대 사회사업 4)
▲여익구(29, 동국대 사학 4)
▲유홍준(26, 서울대 문리대 미학 4)
▲박석률(25, 서강대 3년 중퇴)
▲정성헌(28, 무직)
▲오성숙(22, 이화여대 사회 4)
▲정금채(22, 서울대 상대 무역 4)
▲황승주(24, 서울대 의대 4)
▲송운학(22, 서울대 문리대 심리 3)
▲서종수(22, 서울대 사대 독어 4)
▲최병태(23, 서울대 대학원 1)
▲신수철(22, 서울대 공대 자원 4)
▲김동연(22, 서울대 법대 행정 4)
▲강박인(21, 고려대 사회 3)
▲황민수(20, 서강대 무역 3)
▲김수길(21, 성균관대 행정 2)
▲이상희(22, 경희대 국문 4)
▲김경남(25, 한국신대 신학 3)
▲김광택(23, 영남대 행정 4)
▲김재규(26, 무직)
▲서창석(23, 연세대 기계 4)
민청학련의 배후조직으로 인혁당 관계자들이 지목됨으로써 이른바 제2차 인혁당사건(인혁당재건위사건)이 발생하였다. 인혁당 관련자들은 1974년 5월 27일 비상군법회의 검찰부에 의해 내란예비음모,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은 6월 15일부터 시작되어 약 10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가운데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여정남 등 8명은 19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지 20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집행을 당했다. 즉 2차 인혁당사건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이었다.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사건이라고 발표하였다. 2005년 12월 27일 재판부는 2차 인혁당사건(인혁당재건위사건)에 대한 재심 소를 받아들였다. 2007년 1월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인혁당재건위사건 관련자 8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2007년 8월 21일 인혁당재건위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의 소에서 서울지방법원은 국가가 총 637억여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974년 4월 25일 : 민청학련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 240명 조사, 배후에 인혁당, 조총련, 공산당 복합작용. 청와대 점거 획책
-1974년 12월 10일 : 인혁당사건 7명의 피고가족은 ‘공개재판에서의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대통령에게 보냄. 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 함석헌 등 15명 종교인도 서명
-1975년 2월 19일 : 구속자가족협의회와 구속자가족협의회후원회가 성명을 내고 인혁당사건은 조작극이라고 주장
-1975년 2월 22일 :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 함세웅 신부가 성명 발표. 민청학련사건, 인혁당사건의 공개재판에서의 진상규명 요구
-1975년 2월 24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와 구속자가족협의회 성명을 통해 민청학련사건, 인혁당사건의 진상규명 위한 재야와의 합동조사단 설치 정부에 제안·인혁당사건 자체 진상조사 결과 발표. 개별적인 반공법 위반혐의는 있으나 반국가단체 구성과는 무관하다고 주장. 그러나 황산덕 법무부장관은 인혁당이 반공법에 규정된 반국가단체라고 언명
-1975년 4월 8일 :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민복기 대법원장), 인혁당사건 및 민청학련사건 관련 피고인 36명에 원심대로 형 확정. 사형 8명, 무기 9명. 1978년 8월 15일 긴급조치 4호와 9호로 구속된 학생 이현배, 유인태, 김효순 등 22명 형집행정지로 출감
-1975년 4월 9일 : 인혁당사건 관련자 7명과 여정남, 형 확정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집행(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송상진, 이수병, 우흥선, 김용원, 여정남). 천주교사제단, 인혁당 관련 8명의 전격 사형집행에 항의
-1975년 4월 10일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인혁당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집행을 규탄하는 성명서 발표. 민주회복국민회의, 인혁당 8명 사형집행 및 긴급조치 7호에 대한 항의성명 발표. 피고인의 당연한 재심기회 주지 않고 전격적 형의 집행으로 사건에 대한 의혹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과 긴급조치 7호는 현 정권이 비상수단 아니면 학원사태 해결할 능력 없다는 것 입증했다고 비난. 11일 동 성명서 관계로 국민회의 대변인 함세웅 신부 연행조사
-1975년 10월 15일 : 인혁당 관련 수감자 장석구(47. 징5년, 도피방조죄), 뇌일혈로 옥사
무기 : 김한덕, 유진곤, 나경일, 강창덕, 이태환, 전창일, 이성재
징역 20년, 자격정지 15년 : 김종대, 이창복, 조만호, 이재형, 정만진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 전재권, 임구호, 황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