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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에서 토론회

5일,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10월 7일 창립된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가 주최하여 서울대문리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하여 공화당이 내거는 민족적 민주주의의 본질을 “① 외국자본의 지배를 벗어나 경제적 식민지 양상의 현실을 탈피해서 경제적 자립을 이룩한다. ② 이데올로기적인 면에서는 수구주의, 사대주의, 급진적 서구사상 및 자유방임적 자유의 퇴폐를 탈피한다. ③ 정서적인 면에서는 반미가 아닌 ‘양키즘’을 배격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원조방식을 고쳐달라는 주장이 반미주의 내지 공산주의로 공격받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다시 한 번 한민족의 주체적 확립과 경제적 자립을 강조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387쪽. 1963년 10월 말 김종필이 학생들에게 5·16에 대한 강연을 하고 싶다는 제의를 해왔다. 그러자 학생 그룹 내부에서는 일방적 강연은 있을 수 없고, 토론회 정도는 가능하다는 의견과,강연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맞섰다. 김종필을 초청하자는 쪽에서는 그에게 집중 공격을 퍼부어 군사정권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계기로 삼자는 입장이었고,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오히려 김종필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 위험성이 있고, 토론의 자리를 공개함으로써 학생운동 그룹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하였다. 결국 김종필과의 토론회는 서울대 문리대에서 민비연 주최로 11월 5일 개최되었다. 토론내용은 민족주의, 남북통일문제, 경제개발 5개년계획, 한미관계, 한일관계 등 시국 전반에 걸친 것이었다. 이 토론이 끝난 후 김종필은 대학생들에게 당했다고 하면서 이런 행사를 갖게 된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하며, 박정희로부터 불신과 의혹을 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학생들은 5·16 쿠데타의 허구성을 폭로시키겠다는 의도를 관철시키기보다 도리어 그에게 말려드는 결과를 초래한 점이 있으며, 역부족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박태순·김동춘, 『1960년대의 사회운동』, 까치, 1991, 173~1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