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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판자본 몰수하여 실업자 구제하라” 서울대생 200여 명, 한일굴욕외교 반대와 학원사찰 중지 및 구속 김중태 석방 등을 요구하며 시위

17일 낮, 200여 명의 서울대 학생들은 “한일굴욕외교 반대”, “학원사찰의 즉각중지”, “구속된 김중태 군 석방” 등을 외치면서 데모에 나섰다. 시위대는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만나 그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그에 대한 확답을 듣기 위해 청와대로 가기 위해 나섰으나, 경제기획원 앞에서 300여 명의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여 승강이를 벌였다.
이날 정오 서울대 한일굴욕외교반대투위는 문리대 교정에 모여 ① 학생들의 애국적 행동을 매카시적 수법으로 억압하려는 학원사찰의 즉각 중지와 ② 3·24데모에 앞장섰다가 앞서 동대문서 정보계에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된 투위 위원장 김중태 군의 석방요구를 직접 박대통령에게 전하기 위해 청와대로 가자고 결의, “민족반역도배를 즉각 처형하라”, “한일회담의 일시중단은 기만이다”, “대일외교는 저자세, 학원사찰은 고자세”, “애국학생 김중태군을 즉각 석방하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교문을 나섰다.
“평화선을 침범하는 일 어선을 격침하라”는 구호에서부터 “절량(絶糧)농민을 살리자”는 당면 문제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외치면서, 종로5가~화신 앞~세종로 네거리를 지나기까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행진했던 데모대는, 경제기획원 앞에 이르러 300명가량『경향신문』 1964.4.17 석3면은 500명으로 보도의 경찰대의 저지에 부딪혀 한때 연좌데모에 들어갔으나, 1시 50분쯤 시위학생들은 책가방을 길 가운데 모아둔 채스크럼을 짜고 경찰저지선을 뚫으려다 충돌, 플래카드는 모두 압수당하고 학생 5명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지 못하고 하오 2시 반쯤 학생들은 박 대통령에게 ① 한일회담 중지여부를 18일까지 국민에게 밝히라. ② 김중태 군을 17일 하오 5시까지 석방하라. ③ 학원의 자유를 제도화하라는 세 가지 통첩을 내고 만약 이것이 18일 하오 9시까지 회답이 없을 경우는 4·19기념식장에서 대오를 정비,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중앙청 앞에서 물러나온 학생들은 되돌아서 국회의사당 앞에 당도하여 “매국노 김종필을 국회에서 제적하라”, “한일회담 반대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이자”, “학원의 자유를 법제화하라”,“국회의장이 학생 앞에 나올 때까지 농성하겠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연좌, 국회의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연좌데모를 했다.
한편 이날 시위에 앞서 문리대 현승일은 “중앙정보부가 일부 대학생들을 회유공작하기 위해 1천만 원의 경비를 쓰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폭로하여 학생들을 격분케 했다.『동아일보』 1964.4.17 석1면, 『경향신문』 1964.4.17 석3면
서울대학교 4.17 선언문 왜 우리는 현 한·일회담을 굴욕회담으로 규정하고 기필코 반대하는가?

1. 정부의 저자세를 반대한다.
한·일회담에 임하는 정부의 저자세는 회담 전체에 편재하고 있어 단적인 예로 병석의 오노(大野) 씨에게 김 모 씨는 ‘한약을 증정’하면서까지 이 회담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의 저자세는 가장 집약적으로 평화선양보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① 해양주권선은 일방적 선언으로 국제법과 국제관계에 위배되며, ② 현재의 경비능력으로는 지키지 못하니 양보하여 차라리 실리(약간의 어업협력)를 얻고자 한다. 이는 처음부터 평화선의 가치를 인정치 않는 것이며 한국정부의 주장인지 일본정부의 대변인지 구별조차 어렵다.
평화선도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위배되지 않는다.
(1) 해양주권 선언은 성질상 국제법상 단독행위이며, 이해당사국의 항의로 국제사법재판소의 무효판결이 있기까지 유효하다.
(2) 91개 국가가 연안해역에서의 어로 우선권과 어족조장권을 주장하며 해양주권선을 선언하고 있다.
(3) 일본 자신도 일·미·가(加) 어업협정에서 서경 175도 이동 미거안 1천 리 이상의 미·소협정에서 북위45도 이북 전성에서 어로를 금지당하고 작년 11월 재차 협정된 일·중공 어업협정에서는 우리와 동일수역, 어족, 어법, 목적임에도 거안 60리의 금지수역을 인정하면서 유독 한국에게만 인정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4) 국제관례에는 유리한 것도 있고 불리한 것도 있는데, 자진해서 권리를 포기하고 ‘국제법의 모순’을 준수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공동수역, 규제수역 운운하나 한국어업 능력의 20배를 넘는 일본과 한국의 어업경쟁이 불가능함은 명백하다. 일본어선이 평화선 내에서 노획해가는 연간 어획고는 3억 5천만 불에 달하여 소위 어업협조의 금액을 초과하고 있다(1953년 일본수산청 통계). 이것은 일본이 제공한다는 무상원조 매년 3천만 불을 초과한다(10년 전 일본관청통계임에랴!).

2.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파렴치를 규탄한다.
한·일회담은 “일본은 한국근대화에 기여 운운”의 구보다, “친자관계 운운”의 오노 등, 대정익찬회의(大正翊贊會議) 최고 간부, 도조내각의 상공대신 등 전범들이 추진해왔다. 도탈해 간 민족문화재 반환도 사실상 거부하고 있으며, 문화협력 증여 운운하는 파렴치를 범하여 저들의 강제노역에 징용당했던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를 보장할 것을 거부하고, 반세기의 살인적 폭압과 수탈의 대가는 금전으로 계산할 수도 없지만, 국제법적인 당연한 권리인 일본의 국공채, 보험, 사채, 주식, 저금, 미수 노임, 급여 등에 대한 “청구권조차 경제협력 공여의 부수적 결과로 해소된다”는 식의 파렴치 논법을 고집하고 정부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청구권,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문화재 반환 등의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 불법강점의 범죄적 결과임을 확인하고, 그 역사적 죄악에 대한 사죄의 구체적 표현이 되어야 하며, 이것은 한·일 국교정상화의 전제조건이다.

3. 일본 독점자본의 국내침투를 경계한다.
세계자본주의가 이미 독점적 단계에 들어선 다음 뒤늦게 출발한 일본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청일, 노일전쟁을 통해 성장하여 태평양전쟁으로 패망한 전쟁상인이다. 한국전쟁 뒤 신무, 천황 경기를 타고 기적적으로 재기한 일본자본주의는 세계 제5위의 공업력을 가지고 조선에서 제1위, 철광에서 제2위, 시멘트에서 제3위, 전력생산에서 제5위가 되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배타적 무력경제를 형성하고 있는 금일, 경제권을 갖지 못하고 급격히 팽창한 일본경제는 생산과 시장의 심각한 모순에 직면하여 상품체화량은 1955년을 100으로 하여 1961년 8월에는 214, 1962년 9월에는 296으로 증가하고 있다. 체화된 폐품상품의 축적된 자본의 배설구를 찾아 혈안이 되어 중국과의 감정을 악화시켜가며 중공과 통상하는 일본 독점자본이 옛 식민지를 간과하겠는가.
국교 이전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삼정물산(三井物産), 삼릉상사(三菱商社), 환홍반전(丸紅飯田), 이등충상사(伊藤忠商社), 일면실업(日棉實業), 동양면화(東洋棉花), 강남상사(江南商社), 안택상사(安宅商社),겸송상사(兼松商社) 등 40여 개 상사가 반도, 매트로, 사보이호텔에 주재하면서 본사와 텔렉스 시설까지 갖추고 여행자를 가장하여 세금을 포탈하고 음성적 불법 행위를 자행하여 한국의 교역 총량의 14퍼센트 이상에 관여하여 일립제작(日立製作), 일본운수의 상품광고가 국내 매스컴을 채우고 있다. 이를 방조하고 있는 정부가 이 조수와 같은 일본 독점자본의 침투를 막을 수 있는가.

4. 국내 매판성 자본의 야합을 경계한다.
매년 3, 4억 불의 원조에 의존하던 국내의 매판성 자본은 원조삭감과 함께 새 주인을 찾고 있다. 취약한 국내자본이 거대한 일본자본과 야합하여 그들의 시녀로 타락하여 완전한 일본예속 경제구조로 한국경제가 개편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이권과 결부된 일본자본의 정치자금공세에 한국의 정치가 그들의 보호물로 타락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더욱이 경제정책의 실패를 거듭한 정부는 춘궁기와 함께 오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일본자본으로 해결하려 하며 자립경제를 막는 파행적 경제구조를 만든 그들에 의존하여 자립경제건설을 꾀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5. 일본 독점자본의 광고 문화의 침투로 인한 민족정신의 마비를 경계한다.
한·일 문화교류를 표방하고 정부의 허가하에 건너온 일본문화는 싸론파스 여자야구, 동양레이용, 패션쇼 등등 일본자본의 광고대행 문화였다. 주체성 잃은 문화정책의 결과로 젊은 세대는 재즈 문화로 민족정신이 마비되고 여기에 ‘하오리’문화에 향수를 느끼는 몰지각한 구세대까지 그들의 옛 주인인 저속한 왜색 색정문화에 빠져버린다면 민족정신이 표류할 곳은 어딘가? 일본의 경제협력으로 자립경제가 건설된다는 우상을 부숴라. 미국의 40억 불 원조의 결과가 오늘의 이 빈곤인데 3억 불 일본의 원조가 저들에의 예속시장화 외에 무엇을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1964년 4월 17일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463~4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