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글자 크기 조절

담쟁이를 바라본다

  • 공유하기

죠반니노 과레스키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은 용서와 양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생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소설이다. 시종일관 웃음과 감동, 진한 인간애가 넘쳐나는 소설로 장기 베스트셀러를 점하고 있다. 요즘은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이 주된 독자층이다.

이탈리아 중북부 시골마을 바싸에 사는 신부 돈 까밀로와 우직한 읍장 뻬뽀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돈 까밀로는 신앙심이 깊고 자기주장이 명확하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신부이다. 하지만 성당 안에서 점잖게 강론하고 성당의 일만 하는 신부는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직접 몸으로 뛰고, 신자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주먹질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등장하는 빼뽀네는 읍장이며 동시에 자동차 수리공이다. 그는 정치적 열정이 너무 넘쳐 노동자 해방의 그날까지 인민을 위해 싸우며 불도저처럼 돌진하는 공산주의자다. 소설에서는 늘 둘이 티격태격한다.

필자에게 문규현 신부는 돈 까밀로와 빼뽀네를 합친 모습이 새겨져 있다. 물론 그 둘보다 훨씬 인자하시다. 부안성당에 재직하실 때 찾아뵌 적이 있는데, 주일 아침 성당 앞마당에 나와 할머니 할아버지 신자들을 일일이 꼭 껴안으며 맞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989년 여름 방북한 임수경의 무사귀환을 위해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감옥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그이의 '공생활'은 본격화되었다. 그 후 그는 새만금 개발, 부안 핵폐기장 문제, 대추리 미군기지와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늘 이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에 노정된 소외되고 억눌린 이들과 함께 했다. 2000년 전 예수가 그랬듯이 자신을 낮추어 지렁이처럼 궁벵이처럼 오체투지로, 삽질로 뭉개지고 욕망으로 가득 찬 이 나라의 국토를 참회하듯 피땀을 흘리며 순례했다. 단식 중 쓰러져 생사의 갈림길을 헤매기도 했다. 

문규현 신부가 병상에서 들으며 힘을 얻었다는 노래 <담쟁이>를 소개한다. 도종환의 시에 곡을 붙였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별이라고 모두가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후략)

오체투지를 할 때 그는 아마도 담쟁이 심경이었으리라. 역사의 새 길을 여는 민중들의 질긴 생명력을 담쟁이에서 찾아본다. 담쟁이처럼 무리지어 넝쿨지며 절망의 벽을 넘고 반노동과 착취의 질곡을 넘어 사회정의와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위해 애써온 이들이 있다. '지오쎄'(JOC)라 불리는 가톨릭노동청년회(가노청) 사람들이 그들이다. 1958년 11월 16일 가톨릭 서울교구지부를 모체로 한국 지오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71년 결성된 한국가톨릭농민회는 1966년 JOC의 농촌청년부가 발전한 것이다.

지오쎄 사람들은 설립자인 까르딘 추기경이 품었던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루카 4, 18-19)를 이상으로 하였다. 까르딘은 1915년 11월 독일군이 자신의 조국 벨기에를 침공하자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독일군에 협조한 이들을 '매춘'이라고 준열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자신이 몸소 대독항쟁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연합군에 가담하여 점령군에 맞서 싸우도록 지원하였다.

설립자의 정신에 따라 활동하던 JOC 출신 노동자들이 1968년 '강화도 심도직물사건'으로 부당해고를 당하고, JOC가 정권으로부터 공산주의 단체로 매도당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억눌리고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진 연약한 소녀들을 비롯한 JOC 회원들에게 존경을 표한 따름입니다. 여러분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역사가 증명합니다. 라고 그들을 적극 지지했다.

지오쎄 역대 회장을 역임했던 정인숙, 이창복, 윤순녀와 인선사 유령노조사건 당시 인선사노동조합 정상화수습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투쟁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JOC 전국본부 이철순, 원풍모방의 박순희 등이 시대의 어둠을 타고 넘는 지오쎄의 담쟁이들이다. 또 홍순권처럼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예수의 말씀을 따른 이도 있었다. 광주항쟁 당시 홍순권은 시민군과 함께 도청을 지키다가 계엄군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세차장에서 일하면서 광주 북동지부에서 JOC 활동을 시작했다. 광주항쟁이 발생한 초기부터 참여하여 온갖 궂은 일을 해냈는데 시신 염습일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JOC 회원들과 도청 취사반, 수혈반 등으로 항쟁에 참여하다가,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서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문규현 신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옥 같지만, 거기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며, 세상을 위해 투신하는 가운데 하느님이 계시고, 그 삶이 희망이 된다고 말한다.

JOC 50년의 역사를 담은 책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JOC 50년의 기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헌신하며 절망의 수렁에서 희망을 일구는 이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