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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목소리, 동아일보 백지광고

1974년 12월 26일, 동아일보에 백지광고가 나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1974. 10. 24) 이후 휴간까지 감수하면서 참된 언론이 되기 위해 노력한 대가였다. 백지광고 사태는 1975년 7월 중순까지 계속되었다. 

사료관에는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당시의 신문 묶음철이 보존되어 있다. 기증자 이윤 씨는 동아투위사건 당시 이를 후세에 남겨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모았다고 한다. 동아일보 백지광고의 신문 묶음철은 1974년 12월 26일부터 1975년 3월 11일까지이다. 3월 12일 기자들이 제작거부 농성에 돌입하기 직전까지의  백지광고 묶음철이다. 정확한 수집이다.

1975년 3월 17일, 자유언론을 위해 노력하던 기자 134명이 무더기로 해직되었다. 

광고탄압은 12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동아일보의 오랜 고객이던 광고주들이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광고 계약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백지광고를 싣게 된 12월 26일에는 평상시의 절반도 안 되는 광고만이 들어 왔다. 광고탄압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자 평소 광고의 98%가 떨어져 나갔다.

텅 빈 광고란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각계각층에서 성명서, 결의문이 쏟아져 나왔다. 일반시민과 독자들 사이에서도 ‘동아돕기운동’이 번져나가 성금과 격려전화, 구독료 선납이 줄을 이었다. 해외동포들 사이에서도 '동아돕기운동'이 번지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12월 30일자 1면에 검은 띠를 두른 광고국장 이름의 호소문을 냈다. 개인, 정당, 사회단체의 의견광고와 협찬광고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아돕기운동’은 1975년 새해로 접어들면서 격려광고 형태로 바뀌었다. 1975년 1월1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1면에 ‘언론탄압에 즈음한 호소문’ 광고를 싣고 동아일보 구독운동과 광고를 해약한 기업의 상품 불매운동도 전개하자고 촉구했다. 8면에는 한국교회 여성연합회, 경동교회 교인 일동,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한 시민’도 광고를 통해 동아 돕기를 제안했다. 1월8일부터는 4면에 언론자유수호 격려광고란을 두고 시민들의 광고를 싣기 시작했다.

종교계, 사회단체, 노동자, 농민, 학생, 회사원, 해외동포 등 각계각층의 격려광고가 밀려들었다. 격려광고를 싣기 시작한 지 사흘 만에 광고란은 5개면으로 늘어났고 신문부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밀려드는 광고를 다 싣지 못해 ‘오늘 격려광고 일부는 지면부족으로 내일로 미룹니다.’라는 안내문이 나갈 정도였다. 동아일보 앞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광고 접수를 막기 위해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광고 접수도 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일이 일어났지만 광고를 싣기 위한 행렬은 더 늘어갔다.

그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그것은 정권에 굴하지 말고 언론의 길을 가라는 국민의 요구였다. 격려광고를 싣기 위해 광고료를 쌀로 지불한 가톨릭농민회, 50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고 담뱃값을 모았다는 칠순 노인, 휴일에 신문팔이로 돈을 모은 시내버스 안내양, 고철을 모아 판 동아일보 배달원, 하루 일당을 몽땅 털어 넣은 노동자, 노점상, 2년 동안 콩나물 값을 아껴 모은 저금통을 턴 주부, 점심을 굶고 광고비를 지불한 수영선수도 있었다.

백지광고는 민초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사람들은 신문 나오기를 기다려 광고면을 펼치고 민초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소리를 꼼꼼히 읽었다. 1975년 1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게재된 격려광고는 총 2,943건에 이르렀으며 2월에는 5,069건을 기록했다.

동아일보 격려광고가 쇄도하고 있던 1975년 3월,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경비절감을 이유로 기자와 사원을 연이어 해고했다. 3월 12일에 기자들은 제작거부 농성에 들어갔고,  3월 17일에 끌려나와 거리의 기자가 되었다.

동아사태의 진상이 알려지면서 격려광고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격려광고는 3월에 1,900여 건, 4월에 400건, 그리고 5월 7일 20건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7월 15일, 동아일보는 유신정권과 “긴급조치 9호를 준수한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로 타협하였고, 광고 게재는 7월 16일 재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