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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성당과 월담 스님

“아니, 저, 저, 누구냐!”

누군가가 서울시청 앞 성공회 성당 뒤편 수녀원의 담벼락을 넘어 마당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지나가던 수녀가 그들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는 수녀원에 그것도 이 이른 아침에! 기겁을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다 마당에 떨어진 사람은 다름 아닌 가사 장삼을 걸친 스님들이었다. 수녀원에 스님이라니!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은 허우대가 크고 미남으로 생긴 스님이었고, 한 사람은 까만 승복을 걸친 덩치가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이 서민적으로 생긴 스님이었다. 마당에 떨어진 두 사람은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수녀를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오. 아침부터 월장을 해서 미안하외다. 껄껄껄”

이 기괴한 소동을 듣고 신부들이 달려 나왔다. 신부들의 손에는 몽둥이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여차하면 한 대 후려갈길 기세였다.  

“아, 가만있자. 지선 스님이랑 진관 스님 아니오?”

조금 있다 뒤따라 나온 성공회 성당 박종기 주임 신부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하하, 예. 그렇습니다. 박신부님, 경찰들이 성당 주변을 철통 같이 막고 있는 터라...”

키 큰 스님이 멋쩍게 웃으며 변명처럼 말했다. 허우대가 큰 스님은 바로 불교계를 대표해 6.10국민대회에 참가하려온 지선 스님이었고, 덩치가 작은 스님은 그 유명한 진관 스님이었다. 

“하하. 누구시라고! 어서들 오세요. 안으로 들어갑시다.”

박종기 신부는 급히 그들을 본당 안으로 인도하였다.

“스님! 월담하셨다면서요?”

먼저 와 있던 소설가 유시춘이 그 소식을 듣고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유작가는 어떻게 들어왔어요?”

진관 스님이 반갑게 인사하며 물었다.

“저요? 저야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왔죠.”

그녀는 새벽 기도 시간에 맞춰 피아노 반주자라 속이고 전경들이 어어, 하는 사이에 잽싸게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미 경찰 당국에서는 6.10국민대회를 주관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의 주요 인사들을 며칠 전부터 자택에 철통 같이 연금하고 있었다. 그들의 감시를 피해 이곳에 모인다는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지만, 이들은 그 감시망을 뚫고 대회 2~3일 전에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회장소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두 스님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이미 경찰의 연금을 피해 먼저 와있던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개신교를 대표하는 오충일 목사, 박형규 목사, 금영균 목사, 천주교를 대표한 양권식 신부, 그리고 재야운동가 계훈제 선생 등이었다.

뒤를 이어 민추협의 인사들도 월장이나 저마다의 방법으로 들어왔다. 빈민운동가 제정구, 농민대표인 서경원, 현역 의원인 김현수 등은 박신부의 차를 타고 보좌 신부들과 함께 무사히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6월민주항쟁을 이끌 각계 대표들이었다. 

반가운 웃음 뒤에는 얼굴마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부풀어있었다. 여차하면 끌려가서 감옥살이도 각오해야할 터였다. 그래도 다들 얼굴을 보니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렇게 기독교, 불교, 천주교, 성공회를 아우르는 종교계 대표와 정당, 재야인사들이 하나가 되어 일을 도모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3.1운동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87년  6월 10일은 마침 집권당인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날이었다. 12시 정각. 민정당의 전당대회가 열리는 잠실 운동장에서는 꽃바구니가 터지고 1만여 명의 당원들이 내지르는 만세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치어리더들이 춤을 추고, 유명한 가수들이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의 애창곡 ‘베사메무초’를 부르고 있었다.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전두환은 이미 다음 선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허수아비들을 내세워서 하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그대로 하겠다는 4.13호헌선언을 해놓고 있던 상태였다. 여기서 후보로 지명되면 대통령은 그대로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 서울의 중심에 자리 잡은 성공회 대성당은 바로 이런 움직임과 정반대의 길을 예고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열고 있었다. 12시가 되자 성당의 종루에서 기다렸다는 듯 종소리가 댕댕댕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종소리는 웅장하고 길게 시청 앞을 지나 종로까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맞춰 성당에 모여 있던 재야인사와 종교계 대표들이 삼삼오오 마당으로 나왔다. 종소리와 함께 마이크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민 여러분~!”

높은 옥타브의 여자 목소리였다.

“여기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온 국민의 이름으로, 지금 이 시각 진행되고 있는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무효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사기극을 즉각 중단할 것을 주권자인 국민의 이름으로 엄중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역사적인 6월민주항쟁을 알리는 선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여름의 찬란한 태양이 종탑 위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5공화국을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미처 성공회 성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다른 집행부 사람들은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 모여 집회를 열고 민주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이로써 새로운 역사를 향한 동시다발적인 시민항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경찰이라고 가만히 뒷짐을 지고 있지는 않았다. 집권당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이 성스러운 날의 축제를 방해하는 놈이 누군가! 그들은 이를 앙다물고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끌어낼 기세였다.

이미 전국의 경찰에는 갑호 비상경계령이 내려져 있었다. 길거리마다 검문검색을 강화하였고, 수시로 길 가는 젊은이들의 가방을 털어 수상한 것이 없나를 살폈다. 그런가 하면 방탄복과 최루탄으로 무장한 전경들을 거리마다 골목마다 틈틈이 배치해 두고 있었다. 시위자들을 싣고 갈 수십 대의 닭장차와 사정없이 최루탄을 뿜어댈 페퍼포그도 구석구석 세워 두었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햇살이 넘치는 6월의 거리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길고긴 시간이 흘러 드디어 오후 6시가 되었다. 퇴근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주는가가 그날 행사의 승패를 가늠하는 순간이었다. 성공회 성당 안의 사람들은 바싹바싹 가슴이 타고 죄어왔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6시 정각이 되자 전국의 도심에서 일제히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었다. 그에 맞추어 약속이나 한 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거리로 몰려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 소리는 초저녁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달리던 자동차는 일제히 경적이 울렸고, 곧 이어 거리에 집결해 있던 학생과 시민들이 둑이 터지듯이 텅 빈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목이 터져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이틀 전부터 시민들에게 배포되기 시작한 6.10국민대회을 예고하는 전단을 통해 알려진 이날의 국민행동 요강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은 물러가라!”

“종철이를 살려내라!”

그것은 실로 거대한 물결이었다. 대지를 삼키고 태양을 삼킬 것 같은 물결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들 위로 무자비하게 최루탄이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거리는 하얀 최루탄 연기로 뒤덮였다. 독하고 매운 연기가 눈과 피부로 파고들었다.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성공회 성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귀에도 담장 밖 너머에서 들려오는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여러분! 우리도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요. 나갑시다!”

누군가의 외침에 50여 명의 각계 대표자들은 박종철의 영정을 앞세우고 성공회 정문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행렬이 태평로 거리에 채 나가기도 전에 사복경찰과 전경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왔다. 그들은 쏜살같이 행렬을 덮쳤다. 순식간에 행렬은 난장판이 되었다. 머리띠는 풀어지고 영정은 땅에 나뒹굴어졌다.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뒤섞였다. 

“야, 이눔들아!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나이 많은 계훈제 선생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노인이고 신부고 목사고 스님이고 국회의원이고가 보이지 않았는지 현장에서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대기 하고 있던 봉고차에 짐짝처럼 던져 넣었다. 최루탄 가스 때문에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나뒹굴었다.

그때 누군가 차창 밖을 보며 외쳤다.

“저어기 보세요! 사람들을...! 굉장해요!”

과연 차창 밖에 펼쳐진 세상은 완전히 전쟁터를 방불하고 있었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텅 빈 광화문 사거리 부근은 도처에 최루탄과 돌멩이가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저 멀리 구름 같이 모인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오, 하느님, 우리 대한민국을 굽어 살피소서.”

누군가의 입에서 기도소리가 흘러나왔다. 닭장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하게 젖어왔다. 마침내 19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등장했던 5공 군사정권의 막을 내릴 6월항쟁의 횃불이 힘차게 댕겨지는 순간이었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저녁 바람이 한바탕 불어올 기세였다.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내 마음의 망명정부>, 장편 <풋사랑>, 시집 <겨울 바다>, <남해 엽서>등이 있다.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실천문학사 편집장 역임, 한신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다가 현재는 양평에서 창작과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