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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철아, 할 말이 없대이...

“뭔 놈의 인간들이 경찰이람서 질질 짜고, 그래.”

저녁을 먹고 앉아 마악 읽던 책을 마저 보려고 들던 참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교도관이 지나가다  창살 너머로 툭 던지듯이 말했다. 이부영은 뭔 소린가 하고 눈을 들어 철창께를 쳐다보았다.

“그저께 새로 들어온 친구들 말이우. 박종철이를 물고문해서 죽였다는...”

교도관 한재동이 덧붙이듯이 계속해서 말했다. 비록 교도관과 수감자 사이였지만 한재동은 재야 운동가 이부영을 좀 특별하게 대하고 있었다. 넓은 이마에 안경을 쓴 이부영은 빈틈없는 조선시대의 선비 같은 이미지였다. 해직 언론인 출신으로 이미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했던 이부영은 5.3인천항쟁을 사주했다는 혐의를 받고 영등포 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부영은 귀가 번쩍 띄었다. 

“뭐라구요? 박종철을 고문해서 죽인 놈들이 지금 여기 들어와 있다구요?”

“허어, 그렇다니까요.  근데 말이오, 좀 이상해. 둘 다 징징 짜면서 자기네들은 직접 그런 일에 관계한 적이 없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다는구먼요. 강진균가 하는 친구는 아직 30대의 새파란 나인데 칠순 아버지가 면회를 오자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기까지 했대나요. 위에서 시켜서 그런다고...”

“누명이라고...? 위에서...?”

이부영은 직감적으로 뭔가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론인 특유의 감각이었다. 이부영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한 교도관이 서있는 철문께로 다가갔다. 그냥 앉아서 들을 내용이 아니었다.

“쉿, 어저께도 대공 수사단장이란 자가 면회를 왔답니다. 그런데 면회실에서 언쟁이 벌어졌고, 달래는 소리도 들렸답니다.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거니까 조금만 참고 고생하면 빼내 주겠다고... 그러면서 거금이 들어있는 은행통장도 보여줬대요.”

끙. 이부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가슴이 여지없이 뛰었다. 엄청난 검은 음모의 꼬리가 얼핏 보였다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가까스로 진정한 이부영은 특유의 냉정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교도관, 잘 들어요. 이건 엄청난 사건이오. 자칫하면 나라 전체가 들썩거릴 일이란 말이오. 죽은 종철이도 그렇지만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도 똑 같이 독재정권의 희생양이 되어 사라질 운명이란 뜻이오. 우리가 살리지 않으면 안 되오. 가서 내 말 좀 전해 주시오. 여기 있는 이부영은 결코 당신들 미워하지 않는다고... 대신 모든 걸 뒤집어쓴 채 억울하게 죽지 말라고... 지금 이대로 가면 틀림없이 당신들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중형을 면치 못할 텐데 누가 그 억울함을 풀어주겠느냐고... 박종철의 영혼 앞에 회개하고, 진실을 말하라고 해요! 이 이부영이가 반드시 세상에 알려줄 거니까.”

이부영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기세에 한재동도 적이 감동이 되었다. 평소 민주인사들이 지닌 고결한 인품과 정의감을 익히 알고 있었던 그였지만  새삼 그의 말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공무원 신분이었다. 그것도 교도관이었다. 교도관이란 잡혀온 재소자들은 감시하고 관리해야하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재소자를 도와 그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이부영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온 그들 '고문 경찰'에 대한 감시와 단속도 보통이 아니었다. 외부와의 면회는 일체 금지가 되어 있었고 연일 경찰 고위층에서 찾아와 은밀히 밀담을 하고 가곤 했다. 그런데다 그들이 유치되어 있는 사동에는 따로 교도관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과 이부영이 서로 통방을 하도록 중간다리가 되어 달라는 것이니 한재동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그는 끝내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이부영의 말을 그대로 조한경과 강진규 두 경찰에게 전해주었다. 두 사람 역시 이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란 것은 불문가지였다. 하지만 이부영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대공요원으로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그들은 경찰 조직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시끄러우니까 우선 자기들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고 입을 닫게 하기 위해 온갖 회유를 벌이고 있지만, 일단 이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살인 고문 경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자기들만 희생양이 되어 버릴 것이 뻔했다.

조한경과 강진규의 마음에 결심이 선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마침내 남영동 대공분실 어두운 방에서 벌어졌던 그날의 일들을 세세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들 두 명은 진짜 범인이 아니며 고문에 참여했던 진짜 범인은 세 명이 더 있는데, 그들은 아직도 버젓이 경찰로 근무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런 사실은 이미 경찰이나 검찰 고위층은 다 알고 있으며 그것을 축소, 은폐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고는 가족까지 협박하고 회유하고 있는 중이라고... 

실로 박종철이 한줌의 재가 되어 임진강 위로 날려간 지 4개월 만에 터져 나온 새로운 내용이었다. 이대로 재판에 가면 검찰이나 경찰 각본대로 두 사람에게 모두 뒤집어씌운 채 유야무야 지나가고 말 일이었다.

한재동은 그가 들은 내용을 그대로 이부영에게 전해주었다. 말 그대로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부영은 부랴부랴 한재동에게 필기도구를 부탁했다. 다음 날, 한재동은 볼펜 한 자루와 휴지 한 통을 넣어주었다. 이부영은 언론인 출신답게 두 고문 경찰의 동태, 그들로부터 들은 고문치사 과정의 진실, 검찰의 태도, 경찰 고위간부의 회유 내용 등을 휴지에 꼼꼼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만일 하나라도 틀리거나 거짓으로 밝혀질 경우 그 파장은 상상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몇 번의 검토를 마친 이부영은 한재동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부탁을 했다. 서슬 퍼런 독재 치하의 교도관에게 목숨을 걸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부탁이었다.

“한 교도관, 정말 어려운 부탁인데...”

“말씀하세요. 이미 작심하고 있었습니다.”

한재동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크게 숨을 한번 들이키고는 말했다.

“이 편지 말이오. 급해요! 이걸 수배 중인 내 친구 김정남에게 좀 전해주세요. 직접 만나기 어려우면 당신처럼 민주인사들을 돕고 있는 전병용 교도관한테 부탁하면 될 거요. 이후의 일은 김정남 씨가 알아서 할 거요.”

그러면서 한 뭉치의 종이 다발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깨알 같은 글들이 씌어 있었다. 한재동은 밀서처럼 종이 다발을 품 속 깊이 넣었다. 들키는 날이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이부영의 편지는 천신만고 끝에 전병용의 손을 거쳐 김정남의 손에 들어갔다. 한 꾸러미의 편지를 받아본 김정남의 눈은 화등잔처럼 변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독립군의 밀서처럼 편지를 가슴에 품고 김정남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군사정권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의지할 곳은 오직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 하나 밖에 없었다. 

김정남은 김수환 추기경과 함세웅 신부에게 이부영의 편지 내용과 그간의 경위를 간곡한 필체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비밀리에 그것을 전달하였다. 부디 세상에 널리 알려줄 것을 바라면서...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쏜살처럼 지나갔다. 

1987년 5월 18일 오후 6시 30분. 명동성당에서 ‘광주민주항쟁기념 제7주기 미사’가 열렸다.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1부 미사가 끝나자 이어서 2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제단 단상에 사제단 대표신부인 김승훈 신부가 무거운 걸음으로 올라갔다. 아직 잉크 냄새가 풀풀 나는 타블로이드판 유인물이 미사 참석자들에게 배포되었다. 십자가 앞에 경건히 절을 올린 김 승훈 신부는 침통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장내를 한번 둘러보고는 특유의 느린 어조로 또박또박 유인물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박종철군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은 조작되었습니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김승훈 신부의 목소리가 다소 떨렸다.

“박종철 군을 직접 고문하여 죽게 한 하수인은 따로 있습니다. 박종철 군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으로 구속기소되어 재판계류 중인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는 진짜 하수인이 아닙니다... 범인 조작의 각본은 경찰에 의해 짜졌고 또 현재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경찰은 당초 박종철 군이 ‘책상을 탁, 치자 억, 하고 죽었다’는 식으로 쇼크에 의한 심장마비로 죽은 것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고문 사실을 숨긴 채 조한경, 강진규 경위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으로 그치려 했습니다.”

김승훈 신부의 표정이 더욱 굳고 결연하게 변했다.

“그러나, 여론의 빗발치는 진상조사 요구에 의해 고문치사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범인만은 계속 조작하려고 조한경과 강진규에게만 덮어씌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 두 사람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가운데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진짜 범인들은 아직도 버젓이 이 나라 경찰복을 입고 근무 중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들은 경찰 고위층도 검찰도 이미 알고 있는 바입니다. 천인공노할 일이 아닌 가요!”

그가 성명서를 읽어가는 동안,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검찰청과 치안본부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어수선했다. 며칠 뒤,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던 검찰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재수사를 결정했다. 이부영의 편지에서 나온 내용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노한 사람들은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종철이를 살려내라!”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할 말이 없대이' 

거리에 붙은 플래카드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눈물을 삼켰다. 6월 햇살이 강처럼 넘실대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 순간, 할 일을 끝낸 이부영은 감옥 안에서 혼자 조용히 안도의 숨을 짓고 있었다.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내 마음의 망명정부>, 장편 <풋사랑>, 시집 <겨울 바다>, <남해 엽서>등이 있다.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실천문학사 편집장 역임, 한신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다가 현재는 양평에서 창작과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