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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1980년 5월 31일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여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장악하였다. 국보위는 소위 ‘정치·사회 정화’의 명분으로 신군부에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수많은 민주인사들에 대한 해직과 지명수배, 체포·고문·투옥이 이루어졌고, 구 정치인으로 불리는 세력에 대한 정치 활동 규제와 공직자 숙청, 언론통폐합과 언론계 숙청 등의 조치들이 신속하게 실행되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국민을 향한 살인적인 국가폭력이었던 '삼청교육'이 실시되었다.

삼청교육대의 명칭은 교육대상자들을 검거하기 위한 군경합동작전인 삼청작전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 8월 4일 국보위는 각종 사회악을 단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정화하고 사회개혁을 이룬다는 명분으로 '사회악일소 특별조치'를 발표하고, 포고령 제13호에 의거한 삼청작전으로 1980년 8월 1일부터 1981년 1월까지 5개월간 4차에 걸쳐 60,755명을 법원의 영장 없이, 지역별 인원할당까지 동원하여 체포하였다. 

폭력배를 일소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검거된 사람들 중에는 어용노조간부의 멱살 한 번 잡았다는 노동자, 체불임금 내놓으라고 사장에게 대들었다는 노동자,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 논에 물대는 문제로 싸웠다는 농민, 가족회의 중 언성을 조금 높였다고 해서 존속폭행죄를 뒤집어 쓰고 끌려온 이발사, 몸에 문신이 있다고,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마시고 고성방가 했다고 끌려온 사람들, 김대중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끌려온 칠십 노인, 육성회비를 잘 못 거둔 죄에 대한 사표를 거부하다가 끌려온 선생님, 술값 외상이 조금 있다고 끌려온 사람, 계모임을 하다 끌려온 가정주부, 공부하다가 바람 쐬러 잠깐 밖에 나갔다가 단속반과 마주친 죄밖에 없는 재수생, 벌금ㆍ구류와 같은 사소한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끌려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검사ㆍ경찰서장ㆍ보안사요원ㆍ중앙정보부요원ㆍ헌병대요원ㆍ지역정화위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 의해 A, B, C, D 4등급으로 분류되었다. A급은 군사재판 또는 검찰 인계, B급은 순화교육 후 근로봉사, C급은 순화교육 후 사회복귀, D급은 훈방 조치되었다. 이들에 대한 순화교육은 1980년 8월 4일부터 1981년 1월 21일까지 전후방 26개 부대에서 11차에 걸쳐 실시되었다.

순화교육 입소자들은 이중 삼중의 철조망과 장갑차 그리고 완전무장한 군인들에 에워싸인 채  머리를 빡빡 깎이고, “너희들을 죽일 수도 있다. 종이 한 장만 긁어 보고하면 끝이다.” 같은 위협 속에서 유격훈련, 목봉체조, 제식훈련 등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참기 어려운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며 인간성을 파괴하는 잔인한 구타와 심한 가혹행위를 당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하나, 나는 교육대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둘, 나는 신문잡지 구독 및 라디오 텔레비전 시청을 금한다.

셋, 나는 공공시설을 애호하고 음주 및 흡연을 금한다.

넷, 나는 주면 주는 대로 먹겠다.

다섯, 나는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겠다.

여섯, 나는 개인행동을 일체 금한다. 

이것은 군경합동 일체 소탕작전과 조사, 분류 과정을 거친 39,742명의 입소자들이 4주 동안의 삼청교육을 받으면서 외어야 했던 '수련생 수칙’이다. 이 수칙은 10대의 젊은이로부터 6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련생’들에게 차별 없이 엄격히 적용되었다.

삼청교육 피해자들은 삼청교육 후 법에도 없는 근로봉사를 6개월간 해야 했고, 또 근로봉사중 1980년 12월 18일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제정한 사회보호법의 시행으로 인하여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야 했다. 삼청교육 입소자의 수는 명확하지만 교육기간 중 사망자와 출소자의 수는 불명확하다. 또한 출소 후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거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삼청교육 피해보상계획'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보상계획을 수립하고 삼청교육대 입소 피해자 3,226명의 보상신청을 받았지만 이후 어떠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 후 2002년 10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삼청교육이 위법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발표하였고, 2003년 「삼청교육대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어 2004년부터 다시 보상신청을 받았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삼청교육대의 설치가 불법이며, 교육과정에서 각종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한편 2012년 4월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은 정부에 삼청교육 피해자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2014년에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삼청교육 피해자에 대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판결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