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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구치소의 아침
그 당시 철호는 영등포구치소(현 서울남부교도소) 0.7평의 독방에 갇혀 있었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그는 한 학기를 남겨두고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학내시위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긴조 9호,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걸렸던 것이다. 긴급조치 9호는 악법 중의 악법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하여 일명 긴거리조치라고도 불렸다. 심지어 막걸리를 마시다 박정희 대통령 욕을 좀 했다고 하여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3년씩이나 감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었다.
저녁 점호가 끝나면 구치소 안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동안 바깥에서 사역을 하던 죄수들도 모두 입방(入房)하고 각 사동(舍棟) 입구에 있는 이중 철문마저 자물쇠로 채워지면 하루의 일과가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벽에 새겨놓은 만년달력의 날짜에다 성급하게 엑스를 긋고, 어떤 이들은 체력관리를 위해 열심히 뜀박질을 하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어떤 이는 불경이나 성경책 혹은 영어문법책을 들고 시간을 쪼갠다. 그리고 어떤 이는 수다를 늘어놓고 어떤 이는 노래를 하기도 한다.
이 모든 소리들이 모여 나지막하게 웅성거린다. 삼십 촉 전등 아래 앉아서 이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올라 제법 행복한 기분마저 느껴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철호는 그런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청춘의 한순간도 소홀히 보내지 않기 위하여 독서에 전념하고 있었다. 천장만 높은 좁은 방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6개월가량의 독방생활이 끝나갈 무렵에 첫 재판이 열렸다.
방청객이 철저히 통제된 텅텅 빈 재판정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 재판에서 일명 유신 검사와 유신 판사들은 꼭두각시처럼 공소장과 판결문을 읽었다. 철호는 2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나서 항소심 관할 재판소가 있는 서울구치소(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자리에 위치,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로 이감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무더위가 한참 몰려오던 참이었다.
새로 간 서울구치소는 매우 시끄러웠다. 일제시대 때 지어진 오래 된 건물의 구석구석 여기저기가 허물어지고 비둘기들이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갇혀 있던 곳이기도 했다. 서울구치소에는 거물 정치범들이 워낙 많은 터여서 철호 같은 피라미들에게까지 독방이 돌아오지 않아 일반수들이 있는 방에 하나씩 끼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비좁은 방에 여남은 명이 칼잠을 자려니 무더위에 화병이 나려는 판국에 정말 입 안에서 불을 토해낼 지경이었다. 자다가 눈을 떠보면 옆에 자는 친구의 냄새 나는 입이 그의 입과 꼭 맞닿아 있는 일도 있었다.
1978년 여름. 유신독재정권이 한창 기세를 더해가던 무렵이었다.
12월이면 박정희 대통령의 8대 임기가 끝나는데, 그때가 7월이니 아직 근 다섯 달이 남아 있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100% 가까운 지지율을 자랑하는 집단에서 간단한 요식행위로 다음 임기를 연장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어쩐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래서 일찌감치 선거 아닌 선거를 치러버린 다음 좀 쉬고 싶었는지 모른다. 갑자기 조기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고를 내린 것이었다. 법이고 뭐고 없었다. 대통령이 결정하면 그 뿐이었다.
한 여름에 치른 선거였다. 그날을 디데이로 정해 놓고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모든 양심수들은 구호를 외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저항의 형태를 다 하기로 한 다음, 일제히 단식에 들어갔다. 서로 큰소리로 통방을 하여 이런 소내투쟁 사실을 알렸기 때문에 구치소 당국도 당연히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소 내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장마전선이 예전보다 빨리 형성되었는지 녹녹한 가랑비가 연일 계속되었다.
길고 긴 밤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아침이 밝아왔다. 뺑끼통(감방 안 화장실) 뒤 철창으로 보니 멀리 외곽의 흰 담장 아래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서 눈부신 푸른 몸으로 촐촐히 비를 맞고 있었다.
어느새 여기저기에서 구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냥꾼은 각설이타령만 들어도 반갑다는 말처럼 그 소리에 철호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때 방문 앞에는 언제 왔는지 두 명의 덩치 좋은 무술교도관이 딱 버티고 서서 시찰구 너머로 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투지가 그들의 몸에서 그대로 배어나오고 있었다. 철호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가는 것을 느꼈다. 불안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순식간에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이 나서고 할 계제가 아님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외면하는 척했다.
드디어 철호는 큰 숨을 한번 쉰 다음 철창을 잡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유신헌법 철폐하라! 긴급조치 해제하라! 박정희는 물러가라!”
그 순간 그는 자기 몸의 모든 세포가 활짝 열리는 것을 느꼈다. 기가 막힌 희열감이었다. 모든 세포의 솜털은 바늘처럼 솟아올랐고 알 수 없는 감동으로 닭살이 돋아 올랐다. 불안감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대신 거대한 해방감이 파도처럼 불길처럼 몰려들었다.
“저 악랄한 유신 군사 독재세력들은 또다시 민중을 기만하고 사천만 동포의 가슴에 칼을 꽂았습니다. 여러분! 독재자 박정희를 처단하고 이 기만적인 대통령 선거를 단호히 거부합시다! 민주주의 만세! 독재정권 물러가라!”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 모자라 철문을 차댔다. 옆방 옆방으로 이어지는 그 소리들로 복도는 삽시간에 떠나갈 듯했다. 단단한 시멘트벽에 부딪힌 구호 소리들은 미처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해 왕왕 되울려왔다. 그는 그 순간 죽어버려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투명한 존재로 변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을 뿐이었다. 방문 앞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교도관들이 문을 따고 일시에 들이닥쳤다. 한 녀석이 악에 바친 얼굴로 그의 명치께를 주먹으로 힘껏 질렀다. 일순 철호는 숨이 끊어질 것만 같은 고통으로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억센 손아귀가 뒷덜미를 단단하게 낚아채는 것이었다. 소매가 짧은 푸른 수의가 위로 당겨 올라가자 배의 맨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단추가 하나 툭 뜯겨져나가 바닥에 대굴대굴 굴러갔다.
그런 다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녀석은 그의 팔을 뒤로 꺾어서 들어올렸다. 기가 막히도록 빠른 동작이었다. 그 상태로 복도로 끌려나왔다. 복도에 나오니 이방 저방에서 형편이 비슷하게 끌려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로의 얼굴을 보자 힘을 얻어서 우리는 다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도관들은 민첩한 솜씨로 입을 틀어막더니 얼굴에다 방성구(防聲具)를 채웠다. 방성구는 가죽으로 만든 일종의 마스크 같은 것인데 나무로 된 돌출부가 있어 그것이 입 안으로 쑥 들어와서 혀의 놀림을 완전히 차단해 버리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입 속을 숱하게 채웠을 더럽고 냄새 나는 나무토막이 입 안으로 들어오자 자신도 모르게 심한 구역질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손을 뒤로 하여 수갑이 채워졌다. 어느새 침이 앞섶에 누렇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로는 침을 목구멍 안으로 삼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끌려 긴 복도로 걸어 나갔다. 구치소 내의 구조를 잘 알지 못하는 터라 그곳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도 곳곳에서 들려오는 구호소리만 가슴속에서 불안하게 되울릴 뿐이었다. 그는 어느새 다른 친구들과 고립되어 혼자 끌려가고 있었다. 침은 계속 흘러내렸다. 혀가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이빨로 나무토막을 꼭 깨물었다. 나무는 매우 단단하게 이빨과 부딪혔다.
그가 끌려간 곳은 소위 먹방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은 사용하지 않고 오랫동안 비워둔 방이었는데 가끔 징벌을 받은 죄수들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문자 그대로 텅텅 비어 있는 그 방은 마루가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고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아 낮인데도 어두컴컴하였다. 천장은 높고 마루는 길쭉하게 생긴 좁은 방이었다.
그들은 그를 거기에 처밀어 넣고는 문을 잠가버렸다. 비는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해 여름, 구치소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