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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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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 짜짱~


이른 아침부터 확성기에서 새마을 노래가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얼마 전에 집집마다 하나씩 달아준 확성기였다. 마이크는 이장네에 있어서 이장은 그것으로 마을 사람에게 공지사항을 알리곤 했던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마을 노래가 끝나고 나자 컴컴 헛기침 소리와 함께 이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험험, 오현리 주민 여러부운, 험, 나 이장입니다아. 다들 잘 잤능교? 밤새 별고 없었고요?”

그러자 이장 마누라 소리가 저만큼 뒤에서 들린다.

“아, 씰 데 없는 소리 말고, 할 말만 딱딱 하소!”

분명 이부자리 밑에서 하는 소리가 틀림없었다. 그러자 이장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에에, 아시겄지만, 오늘 우리 오현리 새마을사업 일환으로 마을길 보수 작업이 잡혀 있는 거 다들 알고 기시지요? 그라마 아침 자시고 삽이나 곡괭이, 머시냐... 리아카 있는 집은 리아카 끌고 마을 회관 앞으로 다들 나오소. 알겠지예? 오늘 중앙본부 사람들도 시범마을 시찰 차 오신다니까 한 집도 예외 없이 참석해주길 바랍니데이. 이상입니데이.”

그러고 나서 요란한 잡음소리와 함께 새마을 노래가 다시 한 번 더 우렁차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사나 곡조가 너무나 단조로워서 한번 들으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저으기 저 노래가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손수 만드신 거라 카데예.”

확성기 소리에 깬 마을 끝에 사는 새댁이 일어나 앉아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남편 광호 씨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남편 광호 씨는 담배연기와 함께 한숨을 푹 내쉬며 혼잣말처럼 내 뱉었다.

“니미랄. 저기 알고 보면 다아 지 평생 대통령 해묵을라꼬 하는 짓인기라.”

“오메. 누가 들으마 우짤라고...”

“우짜긴 우째? 할 말도 못하고 살면 그기 독재가 아이고 머꼬?”

“하여간 당신도 그렇게 삐딱하게 생각할 거는 없수. 아, 새마을 하고나서 시멘트 들어와서 담장도 새로 고치고 지붕도 새로 하고 길도 닦고 나니 얼매나 좋아졌수? 그놈의 노름도 없어지고 말이우. 박 대통령 각하가 진짜 일꾼은 일꾼인기라예. 사람들은 모두 우리 위대하신 영도자 덕분이라고...”

“고마 됐소마. 영도자는 무신 영도자고, 각하는 무신 썩어죽을 놈의 각하...! 3선개헌 딱 해놓고 나더니 이제 영구집권 할라꼬 그놈의 총화단결이니 뭐니 사람들을 줄 세워놓는 것 딱 보면 모리나. 새마을운동도 다아 그런기라. ”

그래도 한때는 전문대 물을 먹었다고 나름 비판적인 안목을 가진 광호 씨는 누구에게도 답답한 속을 보일 데가 없어 괜히 아내에게 역정을 내었다.

새마을운동. 모든 일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 1970년 초엽부터  시작되어 유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진 새마을운동은 일면의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또 다른 정치적인 계산이 복잡하게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은 지극히 어지러웠다.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온갖 편법과 회유, 폭력을 동원하여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3선개헌안을 통과시킨 박정희 정권은 민심을 추스르고 다잡기 위한 전국적인 무엇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비록 3선개헌안은 통과시켰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더 나아가 영구집권을 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책이 필요했다.

“이봐 임자, 나라가 조금 시끄러운데 말이야, 뭐 좀 분위기를 확 바꿔줄 좋은 방법이 없나?”

박정희의 말에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 예. 각하. 실은 내무부 장관이랑 한 가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있었습니다만...” 

“뭔가?”

“예. 각하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나라 농촌은 대단히 낙후되어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그동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도시 중심의 공업을 진작시키시는데 여념이 없었는데,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농업국이고 국민들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거나 그 자녀들입니다.”

“기래서...?”

“그래서 농촌을 총동원하여 각성시키는 운동을 전개하시면...누가 시비할 사람도 없을거구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지지층을 확고히 해두는 데도 효과가 있을 거구요. 그렇게 총화단결만 시켜 놓으시면 그 다음에 각하께서 영구히...헤헤. 이런 걸 일석이조라 하죠.”

“음. 일석이조라...”

그의 말에 대통령 박정희는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을 느끼며 혼잣말을 되뇌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내무부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전국적인 운동으로 조직되었다.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마을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 짜짱!


왕왕 울려 퍼지는 군가풍의 새마을운동 노래에 맞춰 이장의 지시대로 오현리 주민들은 아침나절부터 꾸역꾸역 다들 마을회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손에는 삽이나 곡괭이, 대빗자루가 하나씩 들려 있었고, 더러는 리어카를 끌고나오기도 했다. 벌써 이장은 나와서 혼자 바쁘게 수선을 떨고 있었다.

“여러부운! 다 나오셨지예. 그라마 오늘 할 일들을 분담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일단 에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메칠 전부터 시작했던 도랑공사 마무리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곧 시찰단도 오신다고 하니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 열심히 한번 해보입시데이. 알겠지요?”

“예.”

“아, 사흘에 피죽도 한 그릇 못 얻어먹은 사람맨키로 소리가 그게 뭡니꺼. 알겠습니까아?”

“예~!

뒤이어 우렁찬 대답소리가 들렸다.

“근데 시찰단은 뭔 놈의 시찰이오? 나는 감시 받으면서 일하는 거는 딱 싫구먼요.”

듣고 있던 광호 씨가 기어코 퉁을 놓았다.

이장의 눈이 사납게 광호 씨에게 박혔다. 알만한 놈이 무슨 불평으로 꼬리를 다느냐는 투였다.

“어험험. 위에서 암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순리요. 이게 다아 우리 좋으라고 하는 일이니 다른 생각일랑 하지들 마소.”

그러나 광호 씨 역시 물러서질 않았다.

“아, 말이 났으니 말이지 마을마다 멀쩡하게 있던 농악대는 왜 없애버렸소? 장구니 괭가리니 북이니 하는 게 모두 우리 전통 놀인데 그것도 미신이고 전근대적이고 구닥다리요?”

얼마 전에 마을에 보관하고 있던 농악기구들을 군에서 나온 사람이 몽땅 거두어서 싣고 가버린 것을 말했다. 그 사람의 말로는 새마을운동에 방해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마을 농악대의 상쇠로 있으면서 모내기나 가을걷이 때나 명절이면 한바탕 질펀하게 놀았던 광호 씨였다.

없애버린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던 오래된 천하대장군이나 지하여장군 상도 미신이라고 송두리째 뽑아내어 어딘가에 묻어버렸고, 당산나무 아래 살던 마을 무당 수양댁도 다른 데로 쫒아낸다고 하는 말이 들렸다. 미신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한평생 마을에 궂은 일이 생기면 밤새 징을 두드리며 살풀이를 해주던 늙은 무당 할머니를 그렇게 쫒아낸다는 것은 인정상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광호도 어릴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그 할머니의 푸닥거리를 받은 적도 있었다. 

미신이라면 일본 곳곳에 있는 신사는 미신이 아니며, 중국이나 대만 어디에나 있는 사당은 미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낡은 것과 전통적인 것과의 구분을 하지 못하는 작자들 같으니라구... 광호씨의 가슴에 아쉬움과 분노가 함께 치밀었다.   

“어험험. 난 그런 건 모르오. 따지고 싶으면 군에 가서 알아보든지.... 자아, 이런 토론할 시간 없으니까 빨랑빨랑 작업에나 들어갑시다!”

이장은 짐짓 외면한 채 헛기침을 한번 하고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이장의 말에 다들 연장을 챙겨들고 마을 앞 도랑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자 남은 광호 씨는 먼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어쩔 수 없이 체념한 표정으로 그들 뒤를 휘적휘적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고향 산천에도 어느새 여름이 오고 있었다.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내 마음의 망명정부>, 장편 <풋사랑>, 시집 <겨울 바다>, <남해 엽서>등이 있다.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실천문학사 편집장 역임, 한신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다가 현재는 양평에서 창작과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