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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는 양심을 낳고, 양심은 정의로운 사회를 낳는다_ 부산 양서협동조합

  • 등록일자 : 20/10/15

1979년 10월, 부산시 남구 망미동 골목에 자리잡은 계엄사(보안사) 부산분소. 일명 ‘삼일공사’ 

“이노마 새끼들이 책읽기 모임한다고 해놓고, 학생들에게 불순한 사상이나 주입 시키고,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선동질이나 하고, 모여서 역적 모의질 한 거 아이가? 엉? 말해봐!”

“역적이 뭡니까? 역적이? 지금이 조선시댑니까?”

민청학련 출신 김형기의 목소리다.

“이런! 입은 살아서, 머라 씨부렁거리쌓노? 영도자이신 대통령 각하한테 대드는 것이 역적이 아니면 뭐가 역적이고? 오냐, 니들 같은 간첩 새끼들 잡는 것이 우리다. 오늘 죽어 봐라.”

말이 끝나자마자 군홧발이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부마항쟁의 불꽃이 막 타오르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부산지역에 비상계엄령이 떨어졌고,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도처에 깔렸다. 곧 공수부대가 투입될 거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계엄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산지역 사회운동의 중심이었던 양서협동조합부터 쳤다. 그렇지 않아도 부산지역에서 평소에 이미 학생들과 의식화 분자들이 드나든다고 눈 찍어 둔 곳이었다. 그곳의 핵심적인 인물인 중부교회 최성묵 목사를 비롯해 김광일 변호사, 김형기, 박상도 등이 연달아 줄줄이 연행돼 보안사로 끌려 왔다. 

사실 그들의 촉각은 정확했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독재 체제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대통령 긴급조치라는 유례없는 초법적 조처를 내놓았는데 그중에서 악법 중의 악법인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벌써 몇 년째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정치적인 행위는 물론이고 사전 신고나 허가되지 않은 모임은 할 수 없는 초법적인 조처였다.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은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얼어붙은 ‘겨울 공화국’이었다.


‘이런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서울 새문안교회 대학생회 회장으로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부산 출신 김형기의 고민이었다. 요시찰 인물로 낙인이 찍혀 서울에서는 더이상 활동할 수가 없었던 그는 고향인 부산에 있는 중부교회에 은신하고 있던 중이었다.

중부교회 최성묵 목사는 일찍이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로서 보기 드물게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김형기를 품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선배이자 동지로서 함께 고민을 나누었다.

“이런 시대에는 무엇보다 합법적인 운동방식이 필요해요. 무엇이든 걸고 넘어가려고 혈안이 되어 감시하는 놈들이 도처에 깔려 있어. 자칫하면 다시 감옥 들어갈 각오하지 않으면 안 돼.”

“그래서 목사님.”

김형기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협동조합 같은 거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지난번에 박희섭이나 송보경이 같은 친구들을 만났더니, 조합 운동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이기 때문에 저들도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고.”

“협동조합?”

최성묵 목사는 뜻밖이라는 듯이 되물었다.

“예. 제 생각엔 그냥 협동조합이 아니라, 책이랑 결합해서 양서협동조합 이런 걸 만들면 독서 모임도 가능하고... 거기서 책방까지 하나 열어놓으면 사람들이 모일 장소도 되잖아요. 그런 게 여러 개 생기면 전국적인 연대도 가능하구요.”     

“음. 협동조합에 서점이라...”

최 목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책. 이런 가혹한 사상검열의 시대에 책이야말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고 어두운 세상을 밝혀줄 수 있는 횃불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과 서점은 아직 상업적인 영역으로 조금은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책을 매개로 삼는다면 합법적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것도 같았다.

“좋아. 그럼 말이오. 합법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 명망 있는 몇몇 사람들부터 만나보자구. 먼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송기인 신부와 이흥록 변호사, 김광일 변호사, 이런 분들과 의논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다들 뜻있는 분들이고 부산지역 재야의 핵심 인물들이니까.”

그렇게 시작된 일은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긋지긋한 유신체제 아래에서 탈출구가 간절했던 참이었다.


1978년 4월, 부산 YMCA 강당에서 역사적인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 창립대회가 열렸다. 107명의 조합원들이 뜨거운 열기 속에 모였다. 소위 ‘기관원’들도 냄새를 맡고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시비를 걸만한 구석이 없었기 때문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창립 선언문 내용 자체가 그랬다.

<...... 우리 양서협동조합은 첫째, 좋은 책을 벗 삼아 살고자 하는 시민들이 신뢰와 협동의 인간관계를 기초로 모여서, 좋은 책을 판매, 보급, 출판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 협동조합’이다. 

둘째, 좋은 책을 매개로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문화적 자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지역사회를 개발하고, 시민 문화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키우면서 문자 공해를 추방하고 새로운 지적 풍토를 조성하려는 ‘문화공동체’다.>

그리고 곧이어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2층짜리 비좁은 헌 건물을 세내어 '협동서점'을 열었다. 책 냄새가 물씬 나는 헌책방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었다.

2층짜리 건물 1층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서점이었다. 당시 불온도서로 찍혀있던 『어느 돌맹이의 외침』 『전환시대의 논리』 『씨ᄋᆞᆯ의 소리』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2층에는 세미나나 작은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일단 합법적인 공간이 열리자 부산지역의 지식과 정보에 목말라 있던 대학생과 시민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서협동조합의 정신에 동감하는 같은 형태의 조합들이 전국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마산 대구 서울 울산 광주 수원에서도 같은 취지의 양서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과 회사원들도 참여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고, 분야별로 소그룹을 만들어 토론하고 공부하는 모임도 생겨났다. ‘도시문제연구모임’ ‘농촌문제연구모임’ ‘시사문제연구모임’ 등이 그런 것이었고, 조합원 수도 급속히 늘어남에 따라 사진반 연극반 꽃꽂이반 같은 취미 활동 모임도 생겨났다. 

양서협동조합은 양서 모임으로 출발했지만, 어느새 책을 매개로 한 모임의 범위를 넘어 여름과 가을엔 ‘농촌 현장 활동 봉사단’까지 꾸리게 되었다. 사회 변혁을 위한 뜨거운 혁명의 불씨가 소리 없이 안으로 타오르며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당시 핵심인물 중의 한 명인 차성환은, “다른 운동방식에 비해 양서조합운동의 장점은 대중들이 두려움을 갖지 않고 운동가를 만날 수 있고, 양서를 통해 사회의식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데 있어요. 당국에서도 조합이 대외적으로 온건했기 때문에 대놓고 탄압하기 어려웠죠.” 하고 회고했다.

그런 양서조합운동은 부산지역을 넘어 유신독재 치하 새로운 방식의 운동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열성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1979년 10월, 마침내 부마항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부산대학교에서 먼저 불길이 점화되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학우여! 동지여! 독재자의 논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모여서 모여 대열을 짓고 나서자!”

“유신헌법 철폐하라! 학원사찰 중지하라!”

마침내 부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그동안 양서조합을 중심으로 역량을 키워왔던 많은 학생과 시민이 항쟁의 불길 중심에 선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자 호시탐탐 <양서협동조합>을 감시하고 있던 당국의 손길이 맨 먼저 조합 관계자들을 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안사에 끌려간 중부교회 최성묵 목사를 비롯해 김광일 변호사, 김형기, 박상도 등은 지독한 고문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뜻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 마산과 인근 지역으로 무섭게 번져가던 항쟁의 불길도 그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끌려갔던 이들도 모두 풀려났다. 모든 것이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었지만, 다음 해에 이어질 5·18민주화운동의 거대한 불길로 다시 이어지게 될 줄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부마항쟁의 불씨를 키워왔던 부산양서협동조합은 그해 11월 19일 계엄당국에 의해 강제해산되었다. 그러나 소비자 협동조합운동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폭넓은 형식의 문화운동, 그리고 모든 조합원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하는 민주주의적 방식들은 그 후 두고두고 거름이 되어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풍부한 자산으로 계승되었다.

당시 간사를 맡아 조합 2층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했던 박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서로 간에 가족 이상의 친밀감이 있었어요. 하루하루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매일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과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지 그때 알았어요. 내 인생을 돌아보면 그때만큼 신났던 적이 없어요.”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내 마음의 망명정부>, 장편 <풋사랑>, 시집 <겨울 바다>, <남해 엽서>등이 있다.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실천문학사 편집장 역임, 한신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다가 현재는 양평에서 창작과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