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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단식투쟁과 긴급민주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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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후 전두환과 신군부세력이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며 탄압정치를 펴는 가운데 가택연금 상태인 전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1983년 5월 2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민주화를 위한 최소한의 당면과제로 구속인사 석방과 복권,  정치활동 규제 해제, 해직 교수와 근로자 및 제적 학생들의 복직‧복학, 언론통폐합 조치의 백지화와 언론의 자유 보장,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개헌과 반민주악법 철폐 등 5개항을 요구했다. 김영삼은 5.18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이한 5월 18일 ‘단식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나의 이번 단식은 5.17군사쿠데타에 의해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파괴, 부정당함은 물론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백 수천 명의 민주시민이 광주에서 무참히 살상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자책과 참회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며 비극적인 광주사태로 목숨을 잃은 영혼과 거기서 살상된 민주시민들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 동참하는 기회이며, 동시에 반민주적인 독재 권력의 강화와 인권유린 및 정치적인 탄압에 대한 항의와 규탄의 표시이자 민주정치의 확립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나마 시급히 강구되어야 한다는 나의 정치적 요구의 표시입니다. 또한 나의 단식은 앞으로 우리가 전개해야 할 민주화투쟁은 생명을 건 투쟁이어야 하며 생명을 건 투쟁만이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알리면서 나의 투쟁 결의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것입니다. 

김영삼의 단식투쟁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정치세력의 연대와 공동투쟁을 가능하게 했다. 정권은 언론을 통제하여 김영삼의 단식을 알리지 못하게 했으나 AP통신 등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또 국내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정치인들이 동조에 나섰다. 이민우 등 정치인들은 ‘김영삼단식투쟁대책위원회’를 발족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정부당국의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가택에 연금되면 연금된 채로 동조단식에 들어가는 이들이 늘어났다. 

5월 25일 단식사태를 은폐하려는 정부당국은 김영삼을 서울대병원으로 강제 이송시켰다. 김영삼은 일체의 의료행위를 거부하고 단식을 이어갔다. 

김영삼의 단식은 김대중과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2년 12월 23일 형집행정지로 출옥하여 신병치료차 미국에 가 있던 김대중은 김영삼에게 격려전문을 발송하고, 지원 격려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미국에서는 ‘김영삼 총재 단식투쟁 전미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백악관까지 데모 행진을 하는 등 호응이 뒤따랐다.

정부 당국은 5월 30일 김영삼의 연금을 해제하고 해외여행을 권유했지만 김영삼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연금의 해제로 병원에 김수환 추기경, 윤보선 전 대통령, 지학순 주교, 문익환 목사, 박형규 목사 등이 방문하여 단식중단을 당부했다. 

5월 31일 함석헌, 홍남순,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등 재야인사 5인은 김영삼 단식 농성을 지지하며 <긴급민주선언>을 발표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부당한 정치활동 규제는 전면 해제되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복권되어야 하고, 모든 민주학생은 복교되어야 합니다. 모든 양심범은 즉각 석방되어야 합니다. 모든 비민주적인 악법들은 철폐 개정되어야 합니다. 학원은 무조건 자율화 되어야 합니다. 언론은 부당한 검열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국민의 뜻을 따라 국민과 함께 걷는, 국민이 존경하고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민주주의 조국의 새 시대를 여는 일 이상 긴급한 일이 없다고 믿어 우리는 단식으로 그 뜻을 만천하에 전하려고 합니다.

김영삼의 건강이 위독해지자 의료진은 위험을 경고했고, 김영삼은 단식 23일 만인 6월 9일 "나는 부끄럽게 살기 위하여 단식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죽기보다는 서서 싸우다 죽기위하여 단식을 중단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을 중단했다. 그는 병원 치료 후 30일 퇴원했다.

긴급민주선언을 발표한 5인은 6월 9일 '김영삼의 23일간 생명을 건 단식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성의있는 민주화 조치를 취하지 않음에 계속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을 계속했다.

6월 18일 5인은 '전두환 대통령은 폭력정치를 즉각 중지하고, 국민의 뜻을 정책에 수렴‧구현하는 정치와 행정의 정도를 가지 않으려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경고하고, '민주‧통일‧평화를 이룩하는 날까지 국민과 함께 전진할 것'이라는 결의를 다짐하는 제2긴급민주선언을 발표하고 단식을 종결했다. 


김영삼의 단식투쟁은 야당 정치인을 비롯한 민주화진영에 새로운 각성과 활력을 불러일으켰고 재야와 정당, 국내와 해외의 연대투쟁을 성사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