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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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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할 줄 모르는 백성은 영혼이 없는 노예와 같다.’

청록색으로 물들어가는 유월의 거리. 

장 대리는 옛날 어디선가 보았던 함석헌 선생의 말을 음미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채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퇴근길이었다. 대기 속에서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풍겨 나왔다. 괜히 눈이 슴벅거려지고 피부가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빌딩 사이로 어스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퇴근 시간의 거리는 사람들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오늘도 대기 속에서는 이상한 긴장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긴장감은 마치 물이 끓어오르기 직전의 기대에 찬 흥분 같기도 했고, 태풍이 불어오기 직전의 불안함 같기도 했다. 거리 저쪽엔 이제 마악 푸르른 잎을 달기 시작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 일명 ‘닭장차’라 불리는 경찰차들이 줄을 서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마치 로마 병사들처럼 헬멧을 쓰고 곤봉을 든 전경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벌써 오랫동안 익숙해져온 서울 거리의 풍경이었다.

연일 계속된 시위는 이즈음 박종철 군의 죽음으로 더욱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었다.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곳으로 끌려간 젊은 대학생 박종철 군이 물고문 끝에 죽자 경찰에서는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고 발표를 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영영 그렇게 묻히고 말았을 사건이었다. 거기에다 지난 6월 9일에는 연세대생 이한열 군이 교내 시위 중 전경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억울한 젊은이들의 희생은 그동안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서 숨 죽여 살던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었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종철이를 살려내라!”

“한열이를 살려내라!”

그렇게 소리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엔 피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억울한 죽음이 있어선 안된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누가 그랬던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고.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그 말에 실감이 갔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절대 그냥 자신의 권력을 내어놓지 않는다는 교훈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것처럼 지난 4월 13일, 대통령 전두환은 마지막으로 중대한 발표를 하였다. 이른바 ‘4.13 호헌조치’ 라는 것이었다. 직선제 개헌 요구를 묵살하고 지금의 비민주적 간접 대통령 선거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민주화를 염원했던 국민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배신이었고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사람들은 분노하였다. 그리고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가슴 터져라 외치는 함성소리는 서울에서, 광주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로 불길처럼 번져 마침내 유월의 한반도 하늘을 열대야처럼 달구어놓고 있었다.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공식적으로 결성되었고, 종교계와 학생,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대규모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하였다.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권력은 사나운 맹수처럼 변하게 마련이었다. 진압 방식은 날이 갈수록 더욱 무자비해졌다.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최루탄 가스가 거리를 뒤덮고 공기를 타고 하늘 저편까지 이르렀다. 거침없는 폭력은 온 나라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고, 구타를 당하였고, 감옥으로 갔다. 그러나 한번 일어선 불길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맹렬하게 쏟아지는 최루탄에 맞서 젊은 시위대는 짱돌과 화염병으로 맞섰다. 곳곳에서 시위대와 진압대 젊은이들이 부딪혀 다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최루탄을 쏘지마라!”

“무탄무석!”

사람들은 최루탄과 짱돌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외쳤다. 잠시 시위가 멎고 대치 중인 전경의 방패에 꽃을 꽂아주는 시민의 눈에 방석모 그물 너머로 비친 전경의 눈물이 비쳤다. 그들 역시 이 땅의 젊은이들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해, 그렇게 고통에 찬 행군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멈출 수도, 멈추어져서도 안 되는 행군이었다. 

장 대리는 걸음을 멈추고 근처 베이커리에 들러 케이크를 하나 샀다. 아내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였다. 오늘은 사랑하는 아내의 서른두 번째 생일이었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베이커리 아가씨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담으며 말했다.

“큰 거 세 개하고 작은 거 두 개 주세요.”

“사모님 생신인가 보죠?”

“예.”

“좋으시겠어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그녀의 유쾌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왔다. 내친김에 예쁜 후레지아라도 한 다발 살까. 아니, 이왕이면 그 돈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한 병 사는 건 어떨까. 오랜 만에 고기도 좀 굽고 말야. 장 대리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아내랑 둘이서 오붓한 시간 가진 지도 참 오래되었다 싶었다. 결혼 할 때에는 무엇이든지 다 해 주리라 했는데 막상 결혼 하고보니 모든 게 공염불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무엇 하나 제대로 해준 것이 없었다. 

대학시절엔 소박한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꿈을 갖기엔 세상은 너무 무거웠다. 불법적으로 국가권력을 잡은 자들은 뻔뻔스러웠고, 그들 정권이 내건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경찰서 간판의 불빛은 차라리 농담스러웠다. 진리가 없는 세상은 온통 어둠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어둠을 살라먹고 일어나는 들불이 존재하는 법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들판을 태우듯 봄에 시작된 들불은 초여름인 유월로 접어들어 더욱 강한 불길이 되어 전국으로 번져가고 일어나고 있었다. 배신과 오욕의 역사를 넘어 출렁이며, 출렁이며, 넘실대며, 넘실대며, 번져가고 있었다. 물리력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종철이를 살려내라!”

“한열이를 살려내라!”

퇴근 시간이면 장 대리 역시 어김없이 넥타이를 매고 나섰고, 같은 부서의 과장을 비롯한 동료들도 같이 대열에 참여하곤 하였다. 그리고 다 함께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뒷 골목길 슈퍼 근처로 피신해 맥주를 마시며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하였다. 요즘 같은 시절엔 애국자가 따로 없었다. 모두가 한 마음이라도 된 것처럼 조국의 민주화를 열망하였다. 

“어이. 장 대리! 오늘은 집회에 안 나가? 명동성당 앞에서 박종철 군 추모 기도회를 한다던데...”

아까도 퇴근을 하려는데 용 과장이 농담삼아 한 마디를 던졌다. 사람 좋은 그는 요즘은 하루라도 최루탄 가스를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익살을 떨곤 하였다.

“저어, 실은 오늘 소영이 엄마 생일이라서...”

장 대리는 변명삼아 얼버무리며 괜히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 오늘이 우리 제수씨 귀 빠진 날이라 말이지? 어허, 그럼 할 수 없지. 암튼 마나님께 잘 해드려. 나중에 늙어서 원망 듣지 말고....” 

무엇이 미안한 일이고 무엇이 죄스러운 것인지 분명치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퇴근 길 내내 한 마디 말이 머리속에서 떠날 줄 모르고 맴돌고 있었다. 

‘분노할 줄 모르는 백성은 영혼이 없는 노예와 같다.’

분명한 것은 지금 사람들은 분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독재의 어둠 속에서 때로는 영혼없는 노예처럼, 때로는 벙어리처럼 숨 죽여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때였다. 

저녁 6시에 맞추어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길가에서 그 순간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한 떼의 사람들이 도로 한가운데로 쏟아져 나왔다. 삽시간에 넓은 도로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누군가 길다란 플랜카드를 펼쳤다.

동시에 귀익은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장 대리는 자기도 모르게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발걸음을 빨리 했다. 거리로 몰려나온 사람들의 대열은 금세 큰 물줄기로 바뀌었다. 근처 사무실에서 막 퇴근한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합류하자 물줄기는 더욱 커졌다. 누군가가 핸드마이크를 들고 시위대 앞에 서서 연설을 했다. 하지만 마이크 소리는 금세 사람들의 함성소리에 묻혀버렸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

귀청을 울리는 함성 소리는 빌딩을 뚫고 하늘 높이 메아리 쳤다. 장 대리는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감전 된 것처럼 떨려왔다.

‘아니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가야 돼. 아내의 생일이잖아...’

그는 케이크를 든 손에 신경을 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인근 도로에서 다연발탄 터지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따따따다! 따따따다!”

그리고나서 곧 이어 크르릉 거리는 장갑차 소리... 지독하게 매운 최루탄 연기가 삽시간에 거리를 가득 안개처럼 뒤덮었다.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마음 뿐 몸은 점점 빠르게 밀려드는 사람들과 장갑차 사이에 끼어들고 있었다. 한꺼번에 울리는 전경들의 딱딱거리는 군화발 소리가 등 뒤에서 위협적으로 들려왔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백골단이닷! 뛰어요!”

과연 뒤에서 한 무리의 방독 마스크를 하고 청바지에 잠바를 입은 사내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굶주린 사냥개처럼 달려오는 게 보였다. 시위진압대 중 가장 과격한 사복 체포조였다. 그들에게 잡히면 끝장이다. 황급히 쫒기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장 대리도 뛰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순간, 무엇에 채였는지 몸이 공중에서 핑그르르 한번 돌았다. 그 바람에 방금 샀던 아내의 생일 케이크가 저만큼 나가 떨어졌다. 떨어진 케이크를 보며 그는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을 느꼈다. 짧지만 긴 순간이 지나고나자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여보, 소영이 아빠! 뭐해? 빨리 일어나!”

아내의 목소리였다.

“아빠! 어서 일어나요! 어서!”

다섯 살 박이 딸 소영이의 목소리였다. 

그때 누군가가 달려가다 멈추어 서서 넘어진 그를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말없이 자기가 들고 있던 두루마리 휴지뭉치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그 역시 넥타이를 맨 40대의 아저씨였다. 저만큼 발에 채여 아내의 생일 케이크는 무참하게 뭉개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사이 시위대의 대열이 다시 정비 되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사람들이 지르는 함성소리가 빌딩 사이로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다. 택시와 버스가 일제히 경적을 울려대었고, 버스 안에서 누군가가 손수건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리듯이 장 대리 역시 어느 틈엔가 아까 자기를 부축해 일으켜 세워준 아저씨와 함께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대열 속에 섞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장 대리도, 아저씨도 어느새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최루가스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그의 눈에서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노할 줄 모르는 백성은 영혼이 없는 노예와 같다.’ 

이제야 비로소 그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거리엔 어느새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1987년 6월 29일, 민정당 차기 대통령 후보 노태우씨는 마침내 전국적인 민주화 요구에 굴복하여 직선제 개헌을 무조건 받아들이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7월 5일, 이한열 군은 민주화의 결실을 보지 못한 채 스무살 꽃다운 젊은 나이로 영면 하였다. 나흘 뒤 그의 장례식이 열린 시청 앞 광장엔 수많은 인파가 모여 불꽃처럼, 짧고도 아름답게 살다간 그의 삶과 죽음을 함께 나누었다. 그날은 유난히 더웠다.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내 마음의 망명정부>, 장편 <풋사랑>, 시집 <겨울 바다>, <남해 엽서>등이 있다.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실천문학사 편집장 역임, 한신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다가 현재는 양평에서 창작과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