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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의 시대

경찰이 알려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1980년대 초반, 서울 시내 대학교 교문 앞에 전경들이 열 지어 서 있고, 그 사이를 학생들이 학생증을 들어 보이고, 가방을 열어 보이며 지나가고 있다.
며칠 전 법대 친구가 말하기를 “정복 경찰이라고 해도, 불심검문은 경찰관이 자신의 신분이 명시된 증표를 제시하며 소속과 이름을 밝힌 뒤”에 “신분증 제시를 요구해야" 하며, “반드시 응할 필요는 없다.”라고 했는데,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나는 학생증 제시는커녕 “응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말았다.
순간 전경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나는 같이 등교하던 학생들로부터 분리되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황당한 웃음을 짓는 나에게 웃었다는 이유로 시작된 욕설과 함께, 전경들의 군홧발이 내 정강이를 강타하였다. 순간 깨달았다. “법은 멀고 주먹은 무척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막스와 맑스의 차이

그날도 교문 앞에 전경들이 서 있었다. 검문에 응하는 방법을 책이 아닌 몸으로 배운 나는 학생증을 들어 보이고, 가방을 열어 보이며 전경들 사이를 지나가려 했으나, 제지당했다. 전경들에 이끌려 학교 앞, 형사들이 상주하는 초소 앞으로 끌려간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려 노력했다. 그날 저녁 학습모임에서 읽을 사회과학 서적이 마음에 걸렸다. 가방에 들어있는 책과 노트를 책상 위에 쏟아 놓고 두려움을 감추며 앉아 있는데, 형사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를 문제 삼는다. 그 책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라고 이야기해도, 저자가 “막스 베버”라며 “칼 맑스”와 관계를 캐묻는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경제학자이며 철학자라고, 그 책은 금서가 아니라 수업 교과서라고, 혼을 담아 이야기하고, 형사가 본서에 전화로 확인한 이후에, 형사 왈 “앞으로 불온서적을 읽지 말라.”며 훈계 방면한다. 
“근데 형사 아저씨, 저 통행증 하나 써주시면 안 돼요? 다시 학교 가다가 교문 앞에서 잡혀 오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경찰은 교수와 학생을 차별하지 않는다

교수님이 수업 시작과 함께 강의는 안 하고, “무식한 경찰 놈들이 교수를 몰라본다고.” 구시렁거리기 시작한다. 대학 조교수라는 자랑스러운 신분증을 경찰에게 제시하였지만, 경찰은 조교수를 대학원 조교 정도로 안다며, 반말에 가방검사까지 당했다며 제자들 앞에서 당했던 굴욕에 대하여 한참을 이야기한다. 이런 일의 근본 원인은 학교 안에서 시위를 하는 학생들에게 있다며, 학원은 공부하는 곳이니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학교 밖으로 나가서 했으면 한다신다.
역시 주먹 앞에 교수와 학생은 평등했다.

경찰은 사회인도 차별하지 않는다

“가방 좀 봅시다”
내일까지 부장님 책상 위에 올려놓아야 할 결산보고서 때문에 온갖 장부를 싸 들고, 밤샘 작업을 위해 회사 근처 여관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사복 입은 젊은 분들이 부른다. 
학생과 구분 안 되는 외모가 죄라며, 가방을 열어 장부들을 보여주는데, 사복들은 내용 설명을 요구한다. 근처 회사에 근무하는 회사원이라고, 밤샘 작업을 위해 회사 장부를 들고 나왔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납득이 안 된다며 회사 책임자를 부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부장님 댁에 전화를 걸어 부장님을 호출했다.
한밤중에 달려온 부장님 왈 “앞으로 밤샘 근무 하지마!”라고 하신다.
고마우신 경찰님은 학생과 사회인을 차별 없이 대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