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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풍모방노동조합 126인의 증언록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 출간

노동자가 직접 쓴 역사

원풍동지회는 1970년대 민주노조의 전설로 불리는 원풍모방 노조 조합원 126명이 직접 쓴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국가 폭력에 맞선 원풍 노동자 이야기>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원으로 출간하였다. 원풍노조 노동자 5명(양승화, 양태숙, 장남수, 지명환, 황선금)이 동료 126인을 직접 인터뷰하고 이를 풀고 정리하여 완성한 책이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3년 전에 시작되었다. 원풍동지회는 2016년 10월 원풍노조 정기총회 의결을 거쳐 출간 사업을 확정하고 11월 '원풍노조 노동자 백인의 증언록' 자료발간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2017년 1월부터 2018년 5월까지 1년 5개월 동안 인터뷰 모임과 개인 인터뷰를 진행하여 노동자 126명과 자녀 13명의 원고를 작성하였다.

1982년 원풍노조 파괴 작전

입사 순으로 배열한 126명의 원풍노조 조합원들의 삶은 조금은 같으면서 달랐고, 다르면서도 같았다. 당시로서는 나름 좋은 근무조건을 갖췄다는 원풍모방에 입사하여 원풍의 작업장에서 또는 기숙사의 같은방이나 소모임에서 만나 노동자로서 자기정체성을 확립해가며 행복하게 다녔던 기억. 하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빌미로 강제 해고되고, 그 후로 결혼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평범한 그러나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 증언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날이 있다. 바로 1982년 9월 27일이다.

회사는 추석연휴 전에 노조를 깨기로 작전 계획은 잡았던 것이다. 27일, 월요일 오후 1시에 회의가 잡혔는데, 이날 오전부터 수상한 남자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회의가 시작 되는 순간 불시에 남자들이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남자들은 노조사무실을 점령하고 조합장을 에워쌌다. 그리고는 간부들을 모두 밖으로 끌어낸 후 조합장만 남기고 문을 걸어버렸다 나는 노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유리창을 주먹으로 쳐서 깼다. 피가 낭자 하여 조합원들에게 끌려 병원으로 가는데 직포과에서 누군가 따라왔다 기억이 난다.
(내 정체성의 중심, 원풍노조/'박순애'의 기록. 50p )

원풍 노조는 1982년 9월27일 전두환 정권과 결탁한 회사의 노조 파괴 책동에 맞서 4박5일 단식 투쟁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들의 의지는 경찰과 구사대의 폭력에 짓밟혔고 끝내 조합원 560명 강제해고, 8명 구속, 28명이 구류, 240여 명이 연행되었다. ‘노조 활동을 하지 않고 회사 요구를 따르겠다’는 각서 한 장만 내도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었지만 650여명 조합원의 80% 이상이 각서 제출을 거부했다. 당시 군사 정권은 행정력을 총동원해 각서를 제출하지 않은 조합원들을 빨갱이로 몰아 노조를 파괴하였다. 또한 해고자 400여명의 신상을 담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전국 관공서와 공장에 뿌려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막아 삶을 파탄시켰다. 

그해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3월에 다시 올라와 친구들과 구로동을 헤매며 일할 곳을 찾았다. 이력서를 보고는 원풍모방에 다닌 사람은 취업하기 힘들다며 돌려준다. 어느 곳을 가도 취직이 안 돼 아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스타킹 공장에서 일한지 며칠 만에 해고되었다. 이유는 원풍 출신인걸 속였다는 건데, 우릴 소개했던 사람도 원망을 들었다고 한다. 원풍이란 이름을 쓰든 안 쓰든 취업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말로만 듣던 블랙리스트가 이런 거구나.

(미완의 꿈/ '이강숙'의 기록. 509p)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

이후 원풍 노동자들은 1983년 법외노조 활동을 선언하고 실행해나갔다. 그 결과 2002~2007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의거 157명이 명예회복이 되었고, 2010년~2019년 현재까지 국가배상소송 재판에 176명이 참여하여 소송 중에 있다. 

11월 19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200여명의 원풍동지회 회원들과 가족들이 참석하여 책 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선 이사장은 이 책의 발간사를 통해 "1972년, 원풍모방의 전신인 한국모방에서 시작된 민주노조 건설의 빛나는 승리는 단순히 70년대를 대표하는 노동운동의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며 원풍모방의 투쟁을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원풍노조는 70년대 민주노조 중 가장 오래 싸워, 가장 많은 해고자가 나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유신독재와 긴급조치라는 엄혹한 시대 조건 속에서 원풍노조가 이뤘던 성과들은 지금 여기에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으로 이어지고 있다. 책에 실린 원풍노조 126명의 기억과 기록은 잘 알려진 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민초이자 현장 노동자들의 삶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소중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