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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포그 연기 자욱했던 오월 속으로_ 5.3인천민주항쟁

 “자옥아, 오늘 어디가?”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집을 나서려는 자옥에게 엄마가 묻는다.

 “응. 오늘 회사에서 야유회가 있어. 친구들이랑 남이섬 가요.”

 “좋겠구나. 조심해서 다녀와라.”

 “응. 다녀올게요!”

엄마의 걱정스런 말을 뒤로 하고 자옥은 집을 나섰다.

1986년 5월 3일 토요일.

한창 봄기운이 오른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눈에 부셨다. 길거리 플라타너스 가로수에도 마악 돋아난 연둣빛 새잎들이 어린아이 손바닥처럼 하늘거리고 있었다. 청춘의 계절이라는 오월. 

자옥은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설레던 참이었다. 사실 엄마에게는 남이섬에 간다고 했지만 자옥이 탄 버스는 인천시민회관 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같은 회사 노조 위원장인 명자 언니랑 주희랑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모르니까, 다들 복장은 간편하게 하고 와. 최루탄 쏠지 모르니까, 치약이랑 휴지도 준비하고...”

마치 출정식을 앞둔 병사처럼 명자 언니는 미리 당부를 해두었다. 자옥과 주희는 긴장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자옥은 이런 모임에 나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은 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서 추진하는 신한민주당 개헌추진위원회 인천·경기지부 결성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3월 11일에 서울에서 시작된 개헌 현판식은 봄소식과 함께 남쪽에서부터 쓰나미처럼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화의 요구에 목말랐던 대중은 야당이 추진하는 합법적인 행사에 편승해 갈수록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3월 23일 부산에서 시작하여 3월 30일 광주YMCA에서 벌어진 행사는 야당 행사라기보다는 민중대회에 더 가까웠다. 무려 30만 가까이 모인 민중들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숨죽이며 얼어 붙어있던 두려움과 어둠을 깨치고 비로소 자기 가슴 깊숙이 숨겨져 있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하라!”

 “군부독재 퇴진하라!”

그것은 신군부의 등장 이후 1980년대 내내 금기시됐던 소리였고, 야당 행사자들조차 미처 예상치 못했던 구호였다. 뒤이어 대구에서도 10만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보수적인 지역인 대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인원이었다.

그리고 대전, 청주... 갈수록 행사 열기는 더해갔다. 언제부턴가 주최 측인 야당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어가고 있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에 맞서는 분노에 찬 구호는 더욱 높아져 갔다. 

4월 초부터는 민통련 등 재야 단체들이 참가하여 신민당이 건물 안에서 행사를 하는 동안 바깥에서 목마른 대중들의 구호를 대신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민당이 추진하는 이원집정부제 개헌 방향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행사가 된 셈이었다.

야당과 재야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또 있었다. 4월 28일 서울대생 김세진과 이재호가 시위 중 분신을 한 사건을 두고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이었던 김대중이 과격한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고, 며칠 후 당시 야당인 신민당 총재였던 이민우가 전두환과의 소위 영수회담에서 일부 폭력 시위에 대해 단호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합의를 하고 나자 야당과 재야는 완전히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달리는 기관차처럼 모든 것은 바야흐로 임계점에 이르고 있었고, 폭발 지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5월 3일 인천까지 왔다.

자옥이 도착하자 이미 인천시민회관 앞 주안사거리는 아침부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8차선을 꽉 메운 인파 속에 각 단체들이 들고나온 플래카드가 끝이 보이지 않는 파도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전단지가 어지럽게 뿌려져 있었고, 여기저기서 구호소리, 노랫소리, 꽹과리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축제라도 벌어진 것 같은 해방감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쪽을 보니 이런 축제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로마 군인들처럼 방석모와 방석복을 입은 전투경찰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고, 그들 옆에는 검은 코뿔소처럼 단단하게 보이는 페퍼포그 차들이 도열해 있었다. 경찰 지휘관들의 무전기에서 쉴 새 없이 무언가 보고하고 지시하는 소리가 삑삑거리며 들렸다.

축제와 전투. 두 개가 만나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흘렀다. 자옥도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자옥아, 여기!”

돌아보니 명자 언니랑 주희가 플래카드 아래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둘 다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씩씩하게 웃는 그네들 모습을 보자 자옥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두려움도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집회는 각 단체별로 따로따로 열리고 있었다. 민통련 같은 재야 단체는 그 단체 회원들이, 그리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자기네 집행부의 지도 아래 열리고 있었다. 자옥도 명자 언니와 주희를 따라 인천지역 노조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우렁찬 구호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한민주당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러나 축제 같았던 분위기는 점심때가 지나고 오후 1시에 접어들자,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장한 전경과 페퍼포그 장갑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경들이 구령에 따라 발을 구르는 소리가 차갑게 대지에 울려 퍼졌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남자 노동자들과 청년 학생들은 투석전에 대비해 화염병과 쇠 파이프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옥과 명자, 주희는 얼른 근처 가게 쪽으로 몸을 피했다.

이윽고 최루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눈을 찌르는 매운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군중 사이를 뚫고 달려가는 장갑차에서도 흰 연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비명소리를 지르며 갈라졌다. 집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최루탄을 뒤집어쓴 아이 울음소리와 아기를 안고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주안사거리 넓은 8차선 도로는 어느새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노동자와 청년 학생들도 이에 맞서 격렬하게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명자 언니!”

 “주희야!”

자옥은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정신없이 달렸다. 어느새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사라져버렸다. 세 사람은 어느새 흩어져 찾을 수가 없었다. 

시위는 저녁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경찰들의 강경 진압에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명자 언니도 그날 경찰에 잡혀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말도 마.”

명자 언니는 그날을 생각하며 진저리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좁은 유치장에 사람들을 빽빽이 갇혀놓고 무자비하게 다루었어. 남자들은 몽둥이로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여자들은 속옷 차림으로 쪼그려뛰기도 시키면서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렸지. 게 중에는 나중에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으로 유명한 문귀동이란 자도 있었어.”

그날 이후 기다렸다는 듯 특별 검거령과 함께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정보·수사·대공 합동 전담수사반을 편성하여 5월 31일까지 검거를 완료하도록 하였고, 검거 유공자에게는 특진과 현상금을 포함한 후한 포상이 내려졌고, 수사를 태만할 경우에는 엄한 책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5.3인천민주항쟁은 그다음 해, 전두환의 4.13호헌조치, 곧 현행 헌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선언에 이르러 드디어 대폭발을 하였고, 결국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직선제 개헌을 향한 민주화의 발걸음은 한번 시작된 이상 결코 되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발점에 그날 자옥이 보았던 연초록빛 오월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자옥은, 지금도 그날 눈부셨던 청춘의 오월과 함께 잃어버렸던 운동화 한 짝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내 마음의 망명정부>, 장편 <풋사랑>, 시집 <겨울 바다>, <남해 엽서>등이 있다.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실천문학사 편집장 역임, 한신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하다가 현재는 양평에서 창작과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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