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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1. 공포를 넘어, 죽음을 넘어

아무도 시위를 해본 사람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자꾸만 늘어나고 있었지만 아무도 앞에 나서는 이가 없었다. 1979년 10월 18일 오후, 마산의 경남대학교 교정이었다. 

‘선동하기로 약속한 과대표들은 다들 어디로 도망간 거야?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정인권은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형사들이 깔려 부지런히 무전을 주고받았다. 두려웠다.

‘잡히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을 당하겠지? 아니, 아무도 모르게 죽여서 묻어버릴 거야. 연좌제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겠지?’

두 달 전 야당 신민당사에서 YH무역 여공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하다가 무참히 끌려갔고, 박정희 정권은 농성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신민당 김영삼 총재를 국회의원에서 제명해 버렸다. 이에 이틀 전 부산에서 격렬한 반독재 시위가 일어났고, 경남대에서도 학과대표들이 주동이 되어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오후 3시가 되어 3천 명이 모이도록 앞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선배 하나가 정인권에게 말했다.

“나설 사람은 인권이 너밖에 없다. 니가 연설을 잘하니까 나서 봐라.”

왜 하필 내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인권이 머뭇대고 있는데, 도서관 옥상에 1학년 학생 몇이 서성대는 게 보였다. 사고가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인권은 떠밀리듯 앞에 나섰다. 3시 30분이었다.

“학우 여러분! 부산의 대학생들이 박정희 정권 타도를 외치며 목숨 내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경남대 학생들은 무얼 하고 있습니까? 인생의 목표를 상실하고 막걸리에, 미팅에, 연애질에 빠져 살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 등골 빼가지고 등록금만 버리고 하숙비 버리고 그냥 가방 들고 무료하게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까? 이런 대학생활은 개, 돼지 같은 생활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도 부산 학생들과 함께 정의를 위해 싸웁시다!”

앉아 있던 학생들이 곳곳에서 호응했다. 

“독재타도! 유신철폐!”

웅성웅성 처음 해보는 스크럼을 짠 학생들은 전경들이 포진하고 있는 교문을 향해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정인권은 맨 앞줄에 섰다. 책임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까보다 더 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이를 어쩐담? 이제 내 앞날은 끝난 거야. 살아봐야 잡혀가서 고문당해 어차피 불구가 되겠지. 스스로 저 교문 창살에 머리 박고 죽든지 불구가 되는 게 차라리 안 낫겠나...’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떨던 그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내가 그냥 교문 창살에 뛰어 가서 머리 박고 죽을 테니까, 피 흘리고 죽으면 너희가 교문 따고 시내에 진출해서 다 엎어라.”

친구들은 놀라서 그를 붙잡았다. 

“야, 너 와 이러노? 죽을 거까지야 있나?”

“아이다. 내 인생은 이미 끝난 기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승강이가 벌어졌다. 옆에 따라오던 교수들이 이 광경을 보고 달려와 정인권을 뒤로 빼냈고, 형사들이 잡으러 오자 그를 에워싸고 보호해 달아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정인권은 작별인사를 하러 집에 들렀다가 체포되고 말았다.

2. 애국가와 태극기

정인권 뿐 아니라, 처음 시위에 앞장섰던 주동학생들은 대부분 겁을 먹고 달아나거나 체포되었다. 그럼에도 시위는 마산 시가지로 확산되었다. 마침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가운데 밤거리는 수출공단에서 퇴근한 노동자들, 중국집 배달원이나 유흥업소 직원 같은 일반인들로 메워졌다. 하지만 독재의 공포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위대가 제일 많이 외친 구호는 불을 끄라는 것이었다. 

“불 꺼! 라이트 꺼!”

얼굴이 드러날까봐 겁을 먹은 것이었다. 전조등을 켜고 가던 버스나 택시는 시위대의 발길질로 박살이 났다. 상가나 개인집의 불도 모두 꺼졌다. 마산이 생긴 이래 가장 깜깜한 밤이 되었다. 어둠에 용기를 얻은 시위대는 시가지 전역을 누비며 경찰서와 파출소, 공화당 국회의원 사무소 등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기관들마다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버렸다.

“유신 철폐! 박정희 퇴진!”

5천 명이 넘는 시위대가 밀려간 양덕파출소에는 경찰이 다 도망쳐 버리고 텅 비어 있었다. 파출소 안에 몰려 들어간 시위대는 제일 먼저 대통령 박정희의 사진을 떼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밟아 박살을 내버렸다.

“태극기는 보호해라!”

괴성까지 지르며 파출소를 엎어 버리던 청년들은 그러나 태극기 액자는 벽에서 떼어 자랑스럽게 높이 치켜들고 밖으로 나왔다.

“만세! 민주주의 만세!”

한 청년이 태극기를 치켜들자 밖에 운집했던 수천의 군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도 모를 애국가가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어떤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애국가를 불렀다. 이 날 밤 가장 많이 불린 노래는 애국가였다.

그러나 잠시 반짝 빛났던 자유의 불빛은 꺼지고, 또 다시 치떨리는 공포의 시간이 되었다. 다음날 저녁에 재개된 시위는 곧바로 투입된 탱크와 장갑차에 의해 간단히 진압되었다. 이 과정에서 회사원 유치준이 뒤통수가 함몰된 시신으로 발견되는 등 3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수 백 명이 체포되었다.

3. 간첩 누구를 만났냐?

마산경찰서 별관 지하실은 비명과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경찰은 인원이 부족하자 방위병까지 동원해 연행자들을 구타했는데 몽둥이마다 부러지자 세탁실의 빨래방망이까지 동원해 두들겨댔다. 

조사할 때는 남녀를 막론하고 옷을 거의 다 벗겨 놓고 물고문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처음 시위에 불을 당긴 정인권은 특히 혹독한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너 북한에 몇 번 갔다 왔어? 너와 접촉한 간첩 누구야?”

앞도 뒤도 없었다. 무턱대고 간첩의 이름을 대라고 했다. 모른다고 하자 팬티까지 옷을 홀랑 벗겨 두 손을 앞으로 묶은 다음 나무를 꿰어 거꾸로 뒤집어 책상 사이에 걸어놓고 물고문을 했다. 

“말해 이 새꺄! 반드시 네 뒤에는 간첩이 있어!”

경찰은 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에 덮은 다음 머리 뒤에서 수건을 꽉 움켜쥐어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주전자 물을 코에 부어댔다. 고춧가루 물을 마시고 몇 번이나 기절했다. 경찰은 간첩설이 안 통하자 김영삼과 김대중에게서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추궁했다. 이 역시 모두 사실무근이었다. 

시월 말의 추운 지하실에서 몇 시간 동안 발가벗겨져 고문당하니 덜덜 떨리고 죽을 지경이었다. 체력의 한계가 왔다. 나중에는 성기가 쪼그라들어 새까맣게 변했다. 평생 결혼도 못하는 줄 알았다. 특히 악독한 경찰 하나는 몽둥이로 그의 성기를 계속 때렸다.

“제발 성기는 때리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애원했지만 경찰은 희죽희죽 웃으며 더 세게 때리는 것이었다. 다시 고춧가루 물고문을 당할 때는 차라리 빨리 기절하는 게 좋겠다 싶어 붓는 대로 마시고는 바로 기절해 버렸다. 

야간시위의 주역이었던 일반 시민들에 대한 폭력은 더욱 무자비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정비공장에서 일하다가 시위에 참가했던 18살의 지경복 등 여러 청년들이 파출소 방화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잡히는 순간부터 개처럼 두들겨 맞고 고문을 당했다. 공범을 대라는 요구였다. 모두가 개별적으로 참가한 청년들이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댈 수는 없었다. 전기고문, 물고문, 통닭고문까지 당했다.

하숙집 앞에서 시위를 구경하던 고등학생들,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다녀오던 회사원 같은 이들도 무작위로 체포되어 무지막지한 매질을 당하고 고문을 겪었다. 대부분은 고통과 공포에 질려 시키는 대로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안 들으면 책상 밑에 머리를 박게 하고 손만 잡아당겨 자기들이 만든 진술서에 지문을 찍게 했다.

4. 독재자를 위한 기도

경찰은 아침마다 연행자들을 마당으로 불러내 국민체조를 시켰다. 하나같이 바지며 상의까지 피에 절어 딱지가 붙은 채, 온몸이 멍투성이라 거동도 제대로 못하면서 억지로 체조를 해야만 했다. 10월 27일 아침에도 마산경찰서에 수감된 연행자들은 강제로 끌려 나가 경쾌한 라디오 음악에 맞춰 국민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음악이 끊기더니 장송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나운서의 침통한 목소리가 경찰서 안에 울려 퍼졌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어젯밤 서거하셨습니다.”

당황한 경찰이 재빨리 라디오를 꺼버렸지만, 독재자의 종말을 숨길 수는 없었다. 몽둥이를 든 채 감시하던 경찰들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무도 크게 웃거나 만세를 부르지는 않았다. 여전히 마음속에 박힌 공포 때문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유치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비로소 자연인 박정희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여학생 하나가 기도를 맡았다. 

“주님, 저 죄 많은 독재자의 육신을 잘 받아 주시고, 이 나라에 그토록 원하던 민주주의가 이룩될 수 있도록 저희를 도와주소서....”

눈물을 흘리며 올리는 기도였다. 듣던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눈물을 닦았다. 잠 못 자고 씻지 못한 채 얻어맞아 시퍼런 얼굴들마다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자신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한 바퀴 돌렸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감격으로 몸을 떨었다.

글 안재성(소설가, 평전작가)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이후 대표작으로 <사랑의 조건>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연안행> 등의 장편소설과 <이현상평전> <박헌영평전> <이관술> 등의 인물평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