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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만
사업개요
- 유신 이전 시기 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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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이전 민주화운동 역사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번 구술 채록은 1970년부터 19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 전까지 전개된 주요 민주화운동을 기록했다. 과제 범위는 유신 이전 시기의 학생·노동운동, 원주 부정부패 규탄대회 및 지역운동, ‘오적’ 필화사건을 포괄한다.
(유신 이전 시기 학생운동) 1970년대 초반은 산업화 과정의 모순과 독재의 폐해가 표면화되며 전태일 분신, 와우아파트 붕괴, 광주대단지 사건 등 사회적 격변이 잇따른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에 대응해 교련 교육을 강화하며 학원 통제를 시도했으나, 학생들은 1971년 3선 저지와 학원 병영화 반대 투쟁으로 저항했다. 정권은 그해 10월 15일 위수령을 발동하여 학생운동 지도부와 주요 활동가 200여 명을 강제징집하는 조치를 단행했으며, 본 채록은 이러한 탄압과 저항의 역동적인 과정을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 실증적으로 복원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김건만
- 면담자
- 신동호
- 구술일자
- 2019. 9. 27
- 구술장소
- 현대사기록연구원
- 구술시간
- 155분
구술컬렉션 > 1970년대 학생운동 > 연세대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1.05. 연세대 한국문제연구회 회장
1971.06. 전국학생연맹 공동대표
1989 71동지회 초대회장
현재 ㈜블루에어텍 회장
진우전복(주) 회장
사단법인 남도전복연합회 고문
- 구술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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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도가 되려 했는데 학과 공부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해군사관학교를 다니다가 2년 늦게 1969년 연세대 정외과에 입학하였다. 3선개헌반대운동 때 행동대장 역할을 하다가 선배들의 눈에 띄고 한국문제연구회(한연회)에도 가입해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연세대 학생운동은 거의 한연회 단일 라인으로 이루어진다. 총학생회, 정법대, 서클연합회, 민권수호투쟁위원회 등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집회·시위는 한연회가 너무 나서는 모양을 띠지 않게 주의를 분산시킨 결과로 봐야 한다. 1970년 12월에 교련강화반대를 내걸고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현역 교관이 캠퍼스에 들어오는 것부터 막자는 취지로 총학생회를 설득하기 위해 그렇게 시작했지만 싸움이 가열되면서 자연스럽게 교련철폐운동으로 전환되었다.
1971년 한연회 회장으로 지목되었으나 정법대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는 바람에 임시로 허소길 회장 체제로 운영되었다. 그런데 선거에서 떨어져 5월 임원 개선을 통해 한연회 회장을 맡아 교련반대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서울법대 채만수를 통해 김근태, 이신범 등으로부터 전국학생연맹 조직을 넘겨받았다. 윤재걸 선배의 범대학민권쟁취청년단은 한연회보다 윤 선배 개인 차원에서 조직·활동한 것이다. 거기에 관여한 부분은 없다. 전국학생연맹은 외대 선경식 체제로 출범하려 했으나 여러 사람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고 그 다음날 위수령이 내리면서 무산되었다. 김대중과 관련 여부에 대해 혹독한 조사를 받고 군에 강제징집되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전국학생연맹 조직 과정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