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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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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구1977년 10월 25일 시위 사건의 구체적 내용, 연세대 기독학생회 활동, 1977년 4.19 백지선언문 사건의 전말, 노동운동과 기술훈련소 개설, 제주도 4.3 기념사업의 법제화 과정, 제2건국위원회 활동과 한국투명성기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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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상1977년 10월 25일 시위 사건이 확대된 과정, 연세대 탈반 활동과 그 성격 변화 과정, 비운동권 학생이 운동가로 거듭나는 과정, 인천에서의 노동운동과 인노련 활동, 1977년 10월 25일 시위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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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만경제학도가 되려 했는데 학과 공부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해군사관학교를 다니다가 2년 늦게 1969년 연세대 정외과에 입학하였다. 3선개헌반대운동 때 행동대장 역할을 하다가 선배들의 눈에 띄고 한국문제연구회(한연회)에도 가입해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연세대 학생운동은 거의 한연회 단일 라인으로 이루어진다. 총학생회, 정법대, 서클연합회, 민권수호투쟁위원회 등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집회·시위는 한연회가 너무 나서는 모양을 띠지 않게 주의를 분산시킨 결과로 봐야 한다. 1970년 12월에 교련강화반대를 내걸고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현역 교관이 캠퍼스에 들어오는 것부터 막자는 취지로 총학생회를 설득하기 위해 그렇게 시작했지만 싸움이 가열되면서 자연스럽게 교련철폐운동으로 전환되었다.
1971년 한연회 회장으로 지목되었으나 정법대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는 바람에 임시로 허소길 회장 체제로 운영되었다. 그런데 선거에서 떨어져 5월 임원 개선을 통해 한연회 회장을 맡아 교련반대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서울법대 채만수를 통해 김근태, 이신범 등으로부터 전국학생연맹 조직을 넘겨받았다. 윤재걸 선배의 범대학민권쟁취청년단은 한연회보다 윤 선배 개인 차원에서 조직·활동한 것이다. 거기에 관여한 부분은 없다. 전국학생연맹은 외대 선경식 체제로 출범하려 했으나 여러 사람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고 그 다음날 위수령이 내리면서 무산되었다. 김대중과 관련 여부에 대해 혹독한 조사를 받고 군에 강제징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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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복1970년대 연세대 학생운동 주체세력으로서의 이념써클의 내력, 1973년 김대중 납치미수사건 관련 서대문경찰서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음, 1974년의 박대선 총장 사퇴운동, 연세대 개혁운동, 1975년 3,4월 연세대 시위 조직과정, 민중교회 사목과 관련한 현재의 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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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민1970년대 연세대 학생운동 주체는 이념써클이며 기독학생회는 이념써클 해체 이후 운동주체로 등장, 1974년 민청학련이 갖는 사회적 의미, 1975년 3, 4월 연세대 시위와 정부와의 갈등 분석, 1980년 서울의 봄과 관련한 학생운동과 정치권의 관계없음, 80년대 재야운동에 몸담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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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1977년 10월 12일 시위 사건의 구체적 내용, 연세대 기독학생회 활동, 수감생활과 소내투쟁, 노동운동과 청주 지역 전기기술자 노조 설립과정, 의정활동에서 시위 이후의 운동가적 도덕성 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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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수연세대 기독학생회 활동과 KSCF 등의 연합활동, 연세대 학생운동 조직 확대를 위한 작업, 10월 12일 시위 이후의 교내 유인물 작업, 수감생활과 소내투쟁, 80년 봄 각 대학 연락 체계, 목회자로서 군포에서의 지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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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화구술자는 1949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유년시절부터 외가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자로 생활하였다. 구술자는 재수를 하는 과정에서 신학과 진학을 결심했다. 대학 입학 후 3선개헌반대시위에 참여 했다가 시위 주동자로 지명되었다. 이로 인해 붙잡히게 되었고 군 입대를 조건으로 석방되어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제대 후 10월유신이 일어났으며, 구술자는 함석선 선생 아래에서 간디사상연구회에 참여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에 참여하여 학생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구술자는 민청학련 과정에서 간디사상연구회,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와 계속 관련이 되었고 이로 인해 3월 말 사전 검거되었다. 구술자는 재판 과정에서 최후 진술이 의미없다 생각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구술자는 15년 형(2심 12년)을 받았고, 이듬 해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이후 구술자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경찰에 의해 연행여행을 다니기도 했으며, YWCA위장결혼식사건 등 갖은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