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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호강창호는 진주 동명고를 졸업하고, 1983년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에 수석 입학 후 학생운동을 하면서 민정당연수원 점거사건, ML당 사건 등으로 두 차례 구속되었다. 복학 후 교육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국립사범대 우선임용조항에도 불구하고 교원임용에서 제외되었으며, 1989년 1차 발령투쟁 및 전교조 상근 활동, 1998년 2차 발령 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 특별채용 후 서초고 교사로 발령받아 교육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전교조 교육민주화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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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형구술자는 1966년 조선대학교 생물교육과에 입학하여, 1974년 졸업하고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대학 때부터 YMCA 활동을 해서 광주Y교협이 결성되는 1981년을 전후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광주Y교협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87년 민주교육추진 전남교사협의회 회장, 1989년 전교조 초대 전남지부장, 2대, 4대, 6대, 7대 지부장을 역임했다. 전교조 결성을 주도하여 구속되는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1994년 정부의 특별채용 조치 당시 학교 현장을 복귀하지 못하고,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전남 교육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6년 9월 목포기계공고로 복직하여 학교로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뒤늦게 지킬 수 있었다. 2011년 영산 성지고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평생을 교육민주화운동에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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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곤김민곤은 진주고를 졸업하고, 1972년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에 입학 후 대한항공에 취업하였다가 영동여고 교사가 되고, 그 후 서울사대부고 교사로 재직하면서 1982년 YMCA중등교사협의회 활동을 시작하고,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을 주도하였다. 1988년 전교협 결성 이후 전국교사신문 발행을 주도하고,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주도하였다. 대량해직 사태가 발생하자 3선 지도부로서 명동성당 단식농성을 주도하고, 전교조 주요 인물로 수배가 되고, 구속되었다. 출소 후 전교조 사무처장을 비롯하여 교육민주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94년 특별채용 후에도 교육민주화운동을 전개했으며, 그동안의 교육민주화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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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구술자는 1962년 동지상업고등학교 졸업하고, 1966년 포항수산초급대학을 졸업한 후 경남 칠곡군 관내 국민학교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1973년 한국사회사업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마산여상 교사가 되었다. 1989년 전교조 초대 마산지회장으로 경남지역 교육민주화운동을 주도하고, 대량 해직 사태에 직면해 교사들이 명동성당 단식농성을 전개하자 여기에 참여해 전교조 위원장 권한대행으로 활동했다. 1990년 경남도교육청 교섭투쟁 과정에서 구속되고, 1991년부터 제2대, 제3대 전교조 경남지부장으로 활동했다. 전교조 초대 감사위원장, 전교조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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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환배창환은 1974년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유신시대 대학을 다니면서 방황하기도 했고, 군복무 후 복학해서 문학을 중심으로 동인 활동을 하였다. 1980년 영동고교 교사로 교단에 섰고, 1982년 대구경화여고로 옮겼다. 1981년에는 문인에 등단하고, 분단시대라는 동인을 만들어 활동했다. 1984년부터 대구 Y교협 활동을 시작했고,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했다. 1987년 전교협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구지역 활동을 주도했다. 대구지역 4개 권역 평교협연합회 결성을 주도했다. 전교조 결성 이후 1989년 7월말 명동성당 단식농성에 참여하고, 1990년대 대구지역 교육민주화운동의 주요 역할을 맡았다. 1994년 특별채용 당시 교단복귀를 미루고 전교조 대구지부 6-7대 지부장으로 활동했다. 1998년 교단에 복귀했고, 학생들과의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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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만원영만은 춘천고를 졸업하고, 1973년 강원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입학 후 1학년부터 야학활동을 하였다. 1980년 철원 김화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하였다. 여기서 철원에서 가톨릭 농민회 조직을 꾸려보려고 하던 중 만난 황선희 선생님과 결혼하였고, 평생 교육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다. 1984년부터 교육민주화운동을 시작했고, 1985년 춘천YMCA교육자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1986년 강원지역 교육민주화선언을 주도하였다. 1988년 전교협 결성 이후 강원교사협의회 결성을 주도하고,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주도하였다. 1989년 6월 구속되고, 해직되었다. 출소 후에도 교육민주화운동에 매진했으며 1994년 특별채용 후에도 강원지역 교육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1999년 전교조 합법화 후 초대 강원지부장으로 활동하고, 2003년 전교조 10대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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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구술자는 이리여고를 졸업하고, 1978년 전북대학교 사번대학 지리교육과에 입학 후 1982년 졸업하였다. 1986년 7월 12일 전주 YMCA중등교육자협의회 창립 당시 초대 총무로 활동하면서 전북 교육민주화선언을 조직하는 등 전북지역 초기 교육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다. 987년 전주 Y교협 활동을 하던 중 아영중학교에서 해임되고, 1987년 민주교육추진 전북교사협의회 초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였다. 1989년 6월 전교조 전북지부 조직부장, 전북지부장 등으로 활동하고, 탈퇴각서를 제출하지 않아 1989년 8월 16일 임실서고에서 파면 처분을 받았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전교조 6, 7대 [전북]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1998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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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구술자는 1980년 충남대학교 공업교육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1985년 천호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다. 1986년부터 강남·강동지역 교사 소모임 활동을 하고, 87년 천호중 평교사회 창설과 강남·강동지역 교사협의회 창설을 주도하고, 지역교협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88년 전교협 활동, 89년 5월 전교조 준비위, 선봉대 활동을 하고 같은 해 6월 서울 단위 학교 중 두 번째로 전교조 천호중 분회를 결성하고 직위해제 및 파면되었다. 같은 해 6월 전교조 서울지부, 강남강동지회 창립을 주도하고, 90~91년 전교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98년부터 2015년까지 전교조 원상회복 추진위원회 기획실장 및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2003년에서 2004년 전교조 본부 대외협력실장으로 활동하였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평생을 교육민주화운동에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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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석구술자는 1973년 동아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 후 졸업하여, 1979년 8월 대양공고에서 첫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부터 대양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급문집 <여울에서 바다로>를 출간하고, 1983년부터 한국 글쓰기연구회 부산국어교사모임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고, 부산 YMCA중등교육자협의회 활동에 참여했다.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하고, 1988년 부산 교사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1권을 출간하여 교육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89년 전교조 부산지부 초대 부지부장으로 선출되고 8월 해직되었다. 1990년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2권을 출간하고, 1992년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고,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94년 정부의 특별채용 조치에 따라 중앙고등학교로 복직하고 2015년 신도고등학교에서 퇴임할 때까지 교육민주화운동에 헌신하였다. 1980년대 교육민주화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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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국이영국은 1979년 서울대학교 음대에 입학 후 문화운동을 하는 모임을 만들고, 졸업 직후 성남 YMCA 간사로 활동하면서 교사모임과 접했고, 1985년 휘문고 음악교사로 교단에 섰다. 1985년 민요연구회 교사회를 결성하고, 전교협 결성 무렵 휘문고 평교협 결성을 주도했다. 1989년 전교조 결성 관련 대량해직 사태가 발생하자 명동성당 단식농성을 주도하고, 정태춘의 문화공연을 성사시켰고, 전국순회문화공연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전교조 교선국장으로 온나라 걷기대회를 주도하고, 음악교과모임을 결성했다. 1994년 특별채용 후 독일로 유학을 다녀왔고, 그동안의 교육민주화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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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재이을재는 1976년 서울 중앙고를 졸업하고, 197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시위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전공으로 역사교육과를 선택하고, 1981년 졸업 후 서울상서야중, 강서중, 신로림중 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서울강서남부지역 교사모임에 참여했다. 1986년 5월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1987년 1월 신도림중학교에서 해직되었다. 1988년 4월 서울 면목여중으로 복직하고, 전교협 활동을 거쳐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고, 1989년 10월 해직되었다. 1994년 특별채용 되어 인수중학교로 복귀했고, 1999년 전교조 사무처장으로 활동했고, 2000년 서울 상문고. 2001년 서울 신정고 사립학교 민주화투쟁을 지원하고 구속되었다. 교육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구술자는 총 17년의 해직과 세 차례 구속되는 피해를 당했다. 구술자는 해직교사 원상회복추진위원회 활동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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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구술자는 1974년 춘천교대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1977년 서울문창초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이래 1970년대 후반부터 교사 소모임 ‘살으리랏다’를 조직하고 1980년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드는 등 초창기부터 교육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아울러 1983년 결성된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활동을 비롯해 서울 YMCA초등교육자협의회 결성에 참여하는 등 1980년대 상반기 공개적 교사운동에 참여하고, 1985년 무크지 <교육현장> 편집에 참여하였다. 구술자는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 결성 시점에 서울교사협의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하였다가 해직되었다. 1994년 정부의 특별채용 조치로 교단에 복귀한 뒤 삼전초등학교 분회장,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는 등 교육민주화운동에 헌신하였다. 이번 구술에서는 이러한 활동에 기반한 전교조 교육민주화운동의 전개와 과정, 성과와 한계에 대해 채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