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돈
1955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 할아버지는 향교의 전교였으며, 유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집안 어르신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고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회, 정치의식이 성장할 수 있었다. 고2 때 연합교련경시대회 장에서 춘천고가 수상을 거부하였는데, 이 사건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후 강원대 국어교육학과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73년 가을 학내 창가학회 추방시위를 일으켜 유신반대시위로 이어가려고 했다. 한편 ‘거멀못’ 서클 활동을 통해 야학교사로 활약했으며, 거멀못 회원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모임으로 야생마회를 조직하였다. 1974년 2월 6일경 정성헌 선배의 소개로 춘천에서 유인태, 정문화, 김문수, 전홍표를 만나 전국적 학생시위에 관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강원대는 3월 26일, 4월 2일을 시위날로 잡았으나 준비가 부족하여 시위를 하지 못한 채 4월 3일 일제 봉기가 일어나고 긴급조치 4호가 발표되었다. 다음날 오전 경찰이 집으로 와서 체포했고, 재판을 통해 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받아 형을 살다가 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출소하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여 농민운동에 투신하였다. 오원춘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최근까 협동조합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약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해 현재 자택에서 요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