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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출생한 권오성은 철도공무원인 아버지로 인해 어렵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회의식, 정치의식은 성장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71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후 대한 내에서 흥사단아카데미 활동을 시작하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흥사단에서는 사회과학서적보다는 역사 관련한 학습에 집중하는 경향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 선포 이후 1973년 10월 서울대 문리대 시위에 자극을 받고 11월 서강대 내에서 시위를 일으켜 72시간 단식농성을 이어갔다. 그 후 1974년 2월 선배 박석률의 중재로 서울대 이철을 만나 전국적 규모의 학생시위 권유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서울 시위의 신호탄으로 서강대에서 가장 먼저 시위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3월 28일 시위를 시위 날로 정한 후 준비를 하였다. 구술자는 성명서를 작성하고 함께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그러나 시위 당일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날이어서 참여하지 못하였다. 시위 당일 시위는 10분도 채 하지 못하고 경찰에 의해 주동자들이 끌려가면서 끝이 났다. 구술자 또한 그날 저녁 바로 마포경찰서로 출두하여 조사를 받았다. 그 후 재판을 거쳐 징역 8년이 확정되어 형을 살다가 다음해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석방 후 학교로 돌아갔으나 75년 가을 학내에서 다시 시위를 일으켰고,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징역 2년형을 받고 78년 2월 만기출소 하였다. 이후 신학교에 진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79년 명동 YWCA위장결혼식 사건으로 다시 수배가 떨어져 10개월 동안 도피생활 끝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후에도 신앙인이자 사회활동가로 적극 활동하다가 현재는 목사 은퇴를 하고 평신도로서 평범한 여생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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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택1977년 11월 벌어진 서강대 세차례 시위의 직접적인 참여자는 아니었지만 민청학련부터 이어지는 서강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시위의 숨겨진 이야기나 70년대 서강대 학생운동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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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현서강대에서 1977년 11월에 벌어진 두 번째 시위 내용(준비과정과 진행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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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1977년 11월 서강대 시위를 비롯한 70년대 학생운동의 상황과 여학생들의 학생운동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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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서강대에서 1977년 11월에 벌어진 세 번째 시위 내용과 성격, 준비과정과 진행상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