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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가정환경과 정사회 가입, 훈련과정, 학생회장 출마와 71년 투쟁의 준비, 4.19기념토론회의 진행과 조사 과정, 선언문 작성 주체 문제와 고문, 그리고 학습, 선언문 내용과 이후 활동, 인혁당 관련과 재판 그리고 생업, 정진회 사건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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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영구술자는 1953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였다. 구술자는 학창시절 많지는 않지만 신문을 보면서 사회의식을 키웠다고 한다. 1971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전공에 입학하였다. 입학과 동시에 구술자는 정진회에 입회하였다. 구술자는 정진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선배들과 교류를 늘려가며 한국풍토연구회(약칭 한풍회)로 조직을 꾸릴 때 중심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스터디를 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1973년 10월 2일 서울 문리대 시위 이후, 구술자는 여러 선후배들과 함께 11월 5일 경북대 내의 시위를 주도했다. 1973년 말부터 전국적으로 학생연합시위의 움직임이 일어날 때 구술자도 경북대 시위에 참여하였으나, 3월 25일 경 체포되었다. 구술자는 재판 결과 1심 20년 형(항소에서 15년)을 받았다. 구술자는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이후 구술자는 자동차 정비 교육을 받은 후 일을 하였고, 유신반대투쟁을 위해 조직에 가입했다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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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기가정환경과 여정남과의 만남, 보현사의 전태일 추모집회 주도, 71년도 경북대 학내외 상황, 4.19 11주년 기념 토론대회 준비 및 진행, 보안부대와 서에서 계속된 고문과 배후 추궁, 석방 후 활동과 도피, 군 입대와 전후 이재문과의 만남, 이재문과 서도원의 논쟁, 남민전 가입경위, 남민전 활동과 구국선언문 작성자 논란, 정진회 사건의 역사적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