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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빈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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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식
구술자 김건식(활동명 김지민)은 충북 제천에서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열중하며 성장하였다. 1983년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군부독재 체제 아래 억압적인 대학 분위기 속에서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시위 주도와 수감 생활을 거치며 정치적 신념을 확립하게 되었다. 출소 후에는 백기완 민중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하며 정치실무 경험을 쌓았고, 이후 도시노점상연합회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노점상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현장에서 활동가로 참여했고, 이어 결성된 전국노점상연합회(1988)와 전국빈민연합(1989)의 주요 활동에도 깊이 관여하며 각종 집회와 투쟁을 이끌었다. 노점상들의 생존권 요구는 점차 제도화·법제화로 발전하였으며, 1993년 청원운동을 통해 노점 활동의 합법화 및 국가의 제도적 지원을 강력히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노점상 운동 조직 일부의 이권화, 운동 노선 논쟁과 갈등 등의 문제와, 이로 인한 조직 내 분열과 재결합도 존재하였다. 구술자는 생계를 위해 빈민운동을 잠시 떠났다가 복귀하면서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며 빈민운동의 지속성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이번 구술에는 김건식의 생애를 따라 1980년대 노점상 대중운동의 형성과 발전 과정, 전국노점상연합회 및 전국빈민연합의 결성과 활동, 조직 내 갈등과 분화의 구체적인 양상들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또한 1990년대 초 전국도시빈민협의회로 이어지는 대중조직의 흐름,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한 구술자의 경험과 증언 역시 중요한 기록으로 담겼다. 구술 말미에 그는 노점상 운동이 단순한 생존 투쟁을 넘어 민주화운동과 맞닿아 있었음을 강조하며, 그 안에서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였다. 구술자는 이번 구술을 통해 문서로 남기기 어려운 활동가들의 삶과 경험, 그 ‘행간’을 기록함으로써 한국 빈민운동사의 중요한 한 축이 조망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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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규
구술자 김을규(활동명 김성규)는 1950년대 서울에서 태어나, 청년기부터 도시 빈민의 현실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직접 체감하며 성장했다. 1980년대 중반 양평동 철거 현장에서 주민조직을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철거민운동에 뛰어들었고,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 조직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단위 철거민 투쟁을 연대운동으로 확장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철거민들의 주거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임대주택 제도 도입과 가수용단지 운영 등 정책적 대안을 제시했으며, 투쟁 과정에서 체포와 수감, 수배를 경험하는 등 치열한 실천의 현장을 살아냈다. 서철협 이후 1990년대에는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활동을 이어가며 주거권 운동의 제도화와 대중화를 모색하였다. 이번 구술에서는 김을규의 생애를 통해 1980년대 양평동 철거투쟁의 전개와 서철협의 활동, 빈민운동의 조직적 확장과 쇠퇴, 민주화운동과의 관계, 그리고 운동가로서의 자기 성찰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특히 그는 철거민운동을 통해 빈민들이 자신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와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해결을 모색하게 되는 변화가 생겼으며, 이는 대중의 민주화 의식 확장에 기여했다고 평가하였다. 구술 말미에는 자신의 경험과 시대적 기억을 담은 회고문을 낭독하며, 반복되는 권위주의와 시민 저항의 역사 속에서 운동의 의미와 시민의 역할을 성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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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구술자 김정희는 1944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한국전쟁과 가난한 유년기를 겪었다. 경제적 어려움 속 농구와 핸드볼 선수 생활을 병행하였으며,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진주에서 초등학교 체육교사와 세무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1960년대 서울로 상경, 1960년대 후반 문정동에 정착하였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인해 문정동 지역 철거가 본격화되었고, 이에 대응하여 문정동세입자대책위원회가 조직되고 대표로 활동하면서 빈민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철거민 당사자가 스스로 이끌어가는 대중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1987년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 설립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하며 부회장을 맡아 2년여간 활동하였다. 부회장으로서 오금동·석촌동·장지동 등 송파 일대 각 지역 대표단을 조직하고, 서울 및 경기도 철거지역을 오가며 연대와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행정과 주민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며 실질적 대안을 찾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서철협 활동 이후에는 안민회장지동주택협동조합 설립과 주거연합 결성을 주도하며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실천적 노력을 이어갔다. 김정희는 가난 속에서 겪은 다양한 노동 경험을 통해 사회 현실을 체득하였고,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며 철거민들의 의식을 제고하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힘썼다. 이번 구술에서는 김정희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문정동 일대 철거와 서철협 결성과 활동, 빈민 대중조직의 운영, 철거민운동에서 빈민운동의 인식 전환,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철학과 반성적 회고를 통해 1980년대 도시빈민운동의 실천적 기반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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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구술자 김진홍은 1940년대 후반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나 1960년대 초 서울로 상경하여 생계형 장사를 전전하며 도시빈민의 현실을 몸소 경험했다. 1970년대 중반 삼양식품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던 중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다가 불이익을 당한 뒤 회사를 그만두고 방학동 ‘나란히집’에 거주하며 삶을 이어갔다. 1980년대 상계동 철거민운동을 계기로 빈민운동에 참여하였고, 상계동세입자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주민조직을 이끌며 사회적 의식과 실천의 폭을 넓혔다. 이후 북부도시빈민상담소를 설립하고,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주거연합) 창립에도 적극 참여하며 도시빈민 조직화와 입법투쟁에 힘썼고, 전국도시빈민협의회(전빈협) 활동을 거쳐 주민운동단체 코넷(CONET) 설립에도 참여하였다. 이번 구술에서는 김진홍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상계동 철거와 주거연합 활동, 전빈협 결성과 빈민 대중조직의 운영,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철학과 반성적 회고를 통해 1980년대 빈민운동의 실천적 기반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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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희
노수희는 전북 옥구 출신으로, 청년기에 사업을 운영하다 실패한 뒤 상경하여 종로에서 포장마차 노점상을 하였다. 노점상인들이 겪는 불합리한 상황을 직면하며 노점상 운동에 동참, 이후 전국노점상연합(전노련) 결성과 활동을 주도한 지도자가 되었다. 구술에서는 노점상운동의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생존권 투쟁을 통한 민중 조직화 과정, 교계 중심의 온건한 빈민운동과 대비되는 실천적,투쟁적 노선을 상세히 회고한다. 그는 1990년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준비위원회 참여를 계기로 통일운동에 나서며, 빈곤의 근본 원인이 분단체제와 외세 종속 구조에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구술은 NL,PD 논쟁에 대한 견해, 대중조직의 분열, 국가의 감시와 수감 경험 등 당대 민중운동의 현실을 보여준다. 말미에서 노수희는 도시빈민운동(노점상운동)이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연결고리로서 지닌 의미를 회고하고, 후배 세대에게 역사 인식과 주체적 실천의 중요성을 당부하였다. 이번 구술은 빈민운동 중 노점상운동에서 대중지도자로 성장한 한 활동가의 생애를 통해 빈민운동의 궤적과 민중적 통일운동으로의 확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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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천 구술자 박재천은 한신대 신학과 재학 시절인 1974년 유신반대 시위로 제적되고 청계천 마장동 판자촌에 월세방을 얻어 살면서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1978년 故 제정구 선생, 故 정일우 신부 등이 양평동 철거민들과 집단이주 정착지를 조성하고 있는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를 찾아가 함께 생활하며 복음자리마을 건립과 공동체 운동을 함께 했다. 이후 1985년 천주교도시빈민회(천도빈)를 창립해 사무국장과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부터 종교계 빈민운동을 넘어 철거민, 노점상 단체들과 도시빈민공동투쟁위원회를 결정해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92년 전국도시빈민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이번 구술에서는 1980년대 전후로 빈민운동의 흐름과 복음자리 운동, 천주교 빈민운동과 서울시철거민협의회 창립 등 도시빈민공동투쟁 연대운동의 전반에 대해 구술채록했다. -
오용식
- 성장과정과 가족사
- 학창시절과 한신대 신학과 진학
- 대학교 재학시절
- 유신반대 시위와 한신대 휴업령
-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현장(판자촌)실습
- 긴급조치 9호와 한신대 간첩단사건
- 판자촌 생활과 공장취업
- 한신대 고난선언 사건 주동으로 구속
-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1기 훈련
- 목동 등 철거지역 조직화 활동
-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 창립
- 양돈마을 목회활동, 남기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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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월
현호월은 1950년대 초 화성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결혼 후 1980년대 중반 철산리 판자촌에 정착하면서 처음 철거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철산리세입자대책위원회 총무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와 주거권실현을위한주거연합(주거연합)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주거연합 여성위원장, 도시빈민여성연합 설립자 및 대표, 주거연합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특히 여성 주민조직의 확대와 철거민 여성의 자주의식 고양, 풍물·노래 등을 통한 문화적 투쟁 실천에 힘썼다. 면담에서 현호월은 주거연합이 제도적 변화를 이룬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빈민운동 활동가와 대중지도자들의 생활이 보장되지 못해 운동의 지속성과 동력이 약화된 점, 그리고 철거 투쟁과 주거권 운동 결과 일부 주민만이 재정착한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그는 여성들이 철거투쟁의 실질적 주체였음을 강조하며, 투쟁가와 풍물을 통한 연대와 위로의 문화적 저항 실천을 회고했다. 이번 구술에서는 철산리 철거투쟁과 주거연합의 형성과 변화, 도시빈민여성운동과 문화적 빈민운동의 교차, 그리고 빈민운동의 한계와 과제를 중심으로한 경험이 담겼다. 말미에서 현호월은 철거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세대와 방식이 달라지더라도 주거권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