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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천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재천
- 면담자
- 이원호
- 구술일자
- 2024-10-01
- 구술장소
- 한국도시연구소 회의실
- 구술시간
- 03:39:13
구술컬렉션 > 빈민운동 > 1980년대 빈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 1973년 2월 한신대 신학과 입학
1974년 10월 한신대 신학과 제적
1974년~1976년 청계천, 양평동 판자촌 빈민운동, 故 제정구 선생과 활동
1979년~1987년 복음자리마을 복음신협 활동 등 주민공동체 활동
1980년~1982년 한신대 신학과 복학(80), 졸업(82)
1985년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88년 천주교도시빈민회로 명칭변경)회 창립 활동 참여
1988년 천주교도시빈민회 사무국장
1988년 도시빈민공동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
1989년 전국빈민연합 준비 소위원장
1990년 천주교도시빈민회 회장
1992년 전국도시빈민협의회 집행위원장
1996년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 초대대표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 박재천은 한신대 신학과 재학 시절인 1974년 유신반대 시위로 제적되고 청계천 마장동 판자촌에 월세방을 얻어 살면서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1978년 故 제정구 선생, 故 정일우 신부 등이 양평동 철거민들과 집단이주 정착지를 조성하고 있는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를 찾아가 함께 생활하며 복음자리마을 건립과 공동체 운동을 함께 했다. 이후 1985년 천주교도시빈민회(천도빈)를 창립해 사무국장과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부터 종교계 빈민운동을 넘어 철거민, 노점상 단체들과 도시빈민공동투쟁위원회를 결정해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92년 전국도시빈민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이번 구술에서는 1980년대 전후로 빈민운동의 흐름과 복음자리 운동, 천주교 빈민운동과 서울시철거민협의회 창립 등 도시빈민공동투쟁 연대운동의 전반에 대해 구술채록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1983년~88년까지 집중적인 합동재개발 철거 시기 천도빈의 주민 교육 상황. 그로 인해 형성된 대중조직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서철협의 탄생에 대한 설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