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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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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김건식
면담자
김허보람
구술일자
2025년 6월 23일
구술장소
한신대학교 만우기념관 회의실
구술시간
03:38:12

구술컬렉션 > 빈민운동 > 1980년대 빈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83 성균관대학교 산업심리학과 입학

1986~1987 민주화운동 관련 구속(집시법위반), 성균관대 민민투

1987~1988 민중후보백기완선거운동본부, 민중의당 선전국

1988~1994 전국노점상연합회 간사, 선전/홍보부장

1989~1992 전국빈민연합 정책실 차장

1992~1996 전국도시빈민협의회 사무처장

1993~1996 저소득주민을위한재개발법입법추진위원회 사무처장

1994~1996 도시빈민연구소,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1996~1999 건설노동자협동조합 ㈜마포건설 총무

1999~2000 전국노점상연합회 정책위부위원장

2009~현재 (사)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운영이사

2025 ~ 현재 어진이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 김건식(활동명 김지민)은 충북 제천에서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열중하며 성장하였다. 1983년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군부독재 체제 아래 억압적인 대학 분위기 속에서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시위 주도와 수감 생활을 거치며 정치적 신념을 확립하게 되었다. 출소 후에는 백기완 민중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하며 정치실무 경험을 쌓았고, 이후 도시노점상연합회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노점상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현장에서 활동가로 참여했고, 이어 결성된 전국노점상연합회(1988)와 전국빈민연합(1989)의 주요 활동에도 깊이 관여하며 각종 집회와 투쟁을 이끌었다. 노점상들의 생존권 요구는 점차 제도화·법제화로 발전하였으며, 1993년 청원운동을 통해 노점 활동의 합법화 및 국가의 제도적 지원을 강력히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노점상 운동 조직 일부의 이권화, 운동 노선 논쟁과 갈등 등의 문제와, 이로 인한 조직 내 분열과 재결합도 존재하였다. 구술자는 생계를 위해 빈민운동을 잠시 떠났다가 복귀하면서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며 빈민운동의 지속성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이번 구술에는 김건식의 생애를 따라 1980년대 노점상 대중운동의 형성과 발전 과정, 전국노점상연합회 및 전국빈민연합의 결성과 활동, 조직 내 갈등과 분화의 구체적인 양상들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또한 1990년대 초 전국도시빈민협의회로 이어지는 대중조직의 흐름,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한 구술자의 경험과 증언 역시 중요한 기록으로 담겼다. 구술 말미에 그는 노점상 운동이 단순한 생존 투쟁을 넘어 민주화운동과 맞닿아 있었음을 강조하며, 그 안에서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였다. 구술자는 이번 구술을 통해 문서로 남기기 어려운 활동가들의 삶과 경험, 그 ‘행간’을 기록함으로써 한국 빈민운동사의 중요한 한 축이 조망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겼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80년대 구술자의 노점상운동 참여 계기, 빈민운동 대중조직 연대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