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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사업개요
- 민청학련 사건
- ‘유신 전기 민주화운동 역사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된 이번 구술 채록은 1972년 고려대 ‘민우지 사건’, ‘민청학련 사건’, ‘자유언론실천운동’ 등 세 가지 주요 사건을 기록했다. 공간적 범위는 서울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전개된 춘천, 대구, 광주 지역을 포괄하여 유신 체제 초기 저항 운동의 양상을 담아냈다. 사건 발생 후 50년이 경과하여 현존하는 문헌 자료가 극히 희소한 상황에서, 민청학련 시위 주도자 등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을 확보하여 사건의 실체에 실증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비록 시간 경과에 따른 기억의 한계라는 제약이 있으나, 당사자들의 풍부한 진술을 통해 사료적 공백을 메우고 유신 전기 민주화운동을 역사화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김은혜
- 면담자
- 이가연
- 구술일자
- 2021.11.12.
- 구술장소
- 서울시 중구 서울제일교회
- 구술시간
- 157분
구술컬렉션 > 1970년대 학생운동 > 이화여대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0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입학
1974 민청학련 사건 연루 수배
한국노동교육협의회 간사
인천산업선교회 간사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이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비상임 부이사장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는 1951년 경남 마산 출생으로 아버지는 군인,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960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마산 3.15의거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서울 경기여고를 거쳐 70학번으로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빈민운동을 하던 친구와 함께 판잣촌을 찾았다가 큰 충격을 받고 시국강연회, 학습모임 등 학교 밖 세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분신 후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노동자를 위한 삶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화여대 내에 새얼이라는 서클이 생겼을 때 자진해서 들어가서 굉장히 열심히 활동하였다. 3학년 여름방학 때 금강융단이라는 공장으로 위장취업해서 일당 135원을 받았는데, 돈이 없어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어린 여성노동자를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유신헌법 선포 이후 교내에 유신의 부당함, 노동자의 현실 등의 유인물을 만들어 뿌렸다. 73년 11월 28일 대강당에서 노동자의 현실, 민주주의, 인간다운 세상 등을 담은 선언문을 낭독했고, 이 시위는 철야로 이어졌다. 이 시위로 인해 도망자 생활을 하던 중 민청학련 이철 등 지도부에서 찾아와 여학생들 총책을 맡으라는 제안을 했으나 단번에 거절하였다. 그러나 수배 중 신문기사를 통해 본인이 민청학련 자금책이 된 것을 알게 되었고 계속된 도망자 생활 끝에 민청학련관련자들이 석방되어 나오던 때 13개월 만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노동자들은 가장 큰 스승이었다. 현재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이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비상근이사로 활동 중이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이화여대 내 민청학련 시위 전개와 관련하여 본인에게 최초 접촉한 경위 및 시위 이후 자금 총책이 된 사연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