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서중석

  • 공유하기

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서중석
면담자
차성환
구술일자
2021.10.13.
구술장소
서울시 서초구 구술자 자택
구술시간
277분

구술컬렉션 > 1970년대 학생운동 > 서울대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7-1969 서울문리대 사학과 입학, 3선개헌반대시위, 3과폐합반대로 제명

1970-1973 군 입대 및 제대

1973 서울문리대 복학, 10·2시위 경험

1974-1975 민청학련사건으로 옥고

1975-1979 석방 후 진학사 사원 등으로 근무

1979-1988 동아일보사 근무

1984-1987 연세대 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석사학위 취득

1986-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 『역사비평』 주간

1988-1990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에서 한국현대사로 박사학위 취득

1991-2013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1948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제 때 대구사범을 다녔고 독서회사건으로 구속된 적도 있었으나 해방 후에는 농사를 지었다. 익산이 이후 충남 논산으로 바뀌면서 논산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강경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이후 서울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구술자는 1967년에 서울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구술자는 문리대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학생운동서클에도 여럿 참여하였다. 
1969년에는 3선개헌반대투쟁에 참여했고, 3과폐합반대운동에 참여했다가 제적되었다. 그 직후 징집되어 군대로 갔다. 제대 후 복학했는데 1973년 10·2시위를 겪으면서 전국적 학생시위를 조직할 구상을 하면서 이철, 유인태, 나병식 등과 의논했다. 구술자는 원주에 가서 김지하를 만나기도 하고 장준하 선생을 만나 의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국 단위의 학생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대학생은 서울대 내에서는 문리대, 법대, 상대를, 서울지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전국에서는 서울, 대구, 광주를 축으로 하는 이른바 3·3·3제로 조직했다. 그리고 1974년 3월 7일에 회합을 갖고 이철이 책임자가 되고 유인태, 나병식, 구술자 등은 제2선으로 후퇴하여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앞서 시도한 경북대, 연세대 등의 시위가 잇달아 실패했고 최종적으로 4월 3일에 동시다발적 시위를 결정하였으나 3월 28일경 체포되었다. 결국 체포되어 모진 취조를 받았다.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사건을 반국가적 폭력혁명으로 몰았고 인혁당 재건위를 배후조종세력으로 조작하였다. 군사재판에서 구술자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1975년 2월에 석방되었다. 석방 후 어려움을 겪다가 처가 쪽의 도움으로『신동아』기자로 취업하게 되었다. 10·26사건이 나면서 1980년 봄에 복학하였으나 5·17쿠데타가 나면서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구속은 면하고 방면되어 다시 동아일보에 복직하였다. 이후 역사문제연구소의 운영위원, 『역사비평』 주간을 맡아 활동했다. 6월항쟁 이후 1987년 대선 국면에서 후보단일화의 실패에는 김대중 씨의 책임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연세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이후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한국 최초로 현대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민청학련사건의 조사과정에서 겪었던 구술자의 경험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