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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 및 의문사

5.16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 정권은 반공을 제1의 기치로 내걸고 구악을 일소하고, 경제를 발전시켜 국민들로부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했다.
하지만 군정시절부터 4대 의혹사건에 휘말렸고, 국민 여론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한일회담을 추진하였고, 국민에게 한 약속을 저버린 채 민간인에게 정권을 인계하고 군에 복귀하지 않고 정권에 눌러 앉았다. 이후 각종 선거에서의 부정과 비리 및 부패 스캔들에 끊임없이 연루됨으로써 민심으로부터 점차 멀어졌다. 이처럼 국민들로부터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기에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되자, 폭압적 통치체제를 점차 강화함으로써 힘으로 국민을 제압하기 시작한다. 야당 정치인을 살해하고, 간첩사건을 조작하여 무고한 사람을 처형하며, 빈발하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다.
쿠데타 직후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처형하였으며, 67년에 귀순한 이수근이 해외로 탈출하다 발각되어 붙잡혀와 처형되었지만 최근 조사에서 억울한 죽음으로 밝혀지고 있다.
독립군 출신으로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에게 정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던 장준하 선생이 등산 도중 의문의 죽임을 당하였는데, 이 또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유럽 거점 간첩단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자 스스로 중앙정보부에 출두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던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 청사 내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는데, 이것도 중앙정보부에 의한 타살로 밝혀졌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간첩혐의로 사형판결을 받은 8명을 18시간 만에 전격 처형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노동자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정부를 대신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한영섬유의 노동자 김진수 씨는 노조결성을 방해하는 회사측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