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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개헌추진대회 저지 시위를 벌이고있는 인천5·3민주항쟁 현장

인천5·3민주항쟁은 80년 5월 이후 최대의 시위였다. 그동안 크고 작은 투쟁을 통해 역량을 키워온 민주화운동권은 수도권 일대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 이날의 결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운동권 내부의 분열로 이날 시위는 대규모 폭동 이상의 아무런 의의도 얻지 못한 채 해산되고 말았다. 관념적 급진주의는 오히려 대중을 등돌리게 만들었고 탄압의 빌미만 제공했다. 이를 계기로 운동권 내부에서 반성의 기운이 싹트기에 이르렀다. 관념적 급진주의와 소아병적 헤게모니론이 비판대에 오르면서 현실에 뿌리박고 대중과 함께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6월항쟁이 준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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