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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 약 20명 추산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30여 명이 구급환자들을위해 대기하고 있었다.『동아일보』1960. 4. 26 석3면4월 25일 동아일보가 확인한 부상자 명단적십자 병원 •최종우(19, 배제고, 행촌동 4가 45) •이강열(24, 공업, 냉천동 4-1) •민광호(24, 회사원, 대현동) •박근성(21, 직공, 냉천동 79-3) •김승동(13, 정동 16) •이혜춘(23, 영등포구 당산동29) •김광길(19, 오산고 도원동 11) •하석현(남대문시장 2층 내 고학생) 이상 8명 메디칼센터 •조경환(17, 구두닦이, 서소문동 75) 이상 1명 대학병원 •박찬화(18, 대동상고 2년, 중상)‘박찬화(18, 대동상고 2년, 중상)’는 조선일보가 발표한 동대문 앞 부상자 명단 중 ‘박찬하(18, 남, 대동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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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붕 집서 발포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1년, 졸도) •김광일(남19, 오산고, 우복부 파편상) •은현배(남, 뇌좌상, 실신상태) •최정우(남 19, 서대문구 행촌동45, 졸도) •최성림(남 22, 논산읍 화지2동, 엽총상) •윤주남(남 19, 중동고, 1년) •김준호(남21, 묵정동 8-35, 인후출혈)출처 :『조선일보』1960. 4. 26 조3면시위는 오후 11시 반 경부터 차츰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계엄령 하의 통행금지 시간을 염려한 군중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기붕 집 안에는 600명 가량의 시위대원들이 “이대로 나가면 도중에 경찰 놈한테 붙들려 죽고 만다. 농성하자”는 측과 “군인아저씨한테 부탁해서 집까지 보호해 달라고 하자”는 측의 양론으로 한참 옥신각신 하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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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준무효화 학생시위 전국으로 확대 박정희 정권 타도 구호 다시 나타나
일자 : 1965.8.2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및 지방의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와 오산고교생 등 1만여 명의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한일협정비준 무효화하라”, “일당국회 해산하고 총선거 실시하라”는 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여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최루탄을 쏘고 경찰봉을 휘두르며 강력히 저지했고, 일부 학생들은 투석으로 대항했는데, 이로 인해 쌍방 간에 수명의 부상자를 내고 100여 명의 학생들이 연행되었다. 한편 이날 건국대, 명지대, 전남대생 1,000여 명도 성토대회를 열었다. ▶연세대=23일 오전 10시 40분경 연세대생 2,000여 명은 교정에서 성토대회를 연 뒤 “한일협정비준을 무효화하라”는 등 플래카드를 들고 “나라 팔고 축배...